의료 AI 비즈니스로 돌아가기
의료 AI 비즈니스신윤섭·2026년 8월 24일

FDA가 생성형 AI 의료기기를 의사처럼 시험하는 안을 꺼냈다

공유

2026년 8월 18일 FDA 산하 CDRH가 생성형 AI 의료기기를 어떻게 규제할지 묻는 토론 문서를 공개했다. 의견수렴은 10월 19일에 닫힌다. 뼈대는 두 가지다. 위험을 가로세로 두 축의 격자로 다시 그리고, 시판 전 평가를 사람 의사에게 면허를 주는 절차에 빗대 벤치마킹과 임상 확인 둘로 나눈다. 문서 한가운데에는 이런 질문이 놓여 있다. 허가 전에 덜 확인하는 대신 출시 후에 더 지켜보는 맞바꿈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가이던스가 아니라고 먼저 못을 박은 문서

문서 이름은 "Considerations for the Regulation of Generative AI-Enabled Medical Devices: Discussion Paper and Request for Feedback"다. 만든 곳은 FDA 의료기기·방사선보건센터(CDRH) 안에 있는 디지털헬스 우수센터(DHCoE)이고, 도켓 번호는 FDA-2026-N-7874, 의견수렴 마감은 2026년 10월 19일이다. 본문에 번호가 붙은 토론 질문이 26개, 벤치마킹 요소가 10개 들어 있다.

읽기 전에 짚어야 할 것은 이 문서가 무엇이 아닌지다. 첫 장 상단에 네 문장짜리 단서가 붙어 있다. 이 문서는 초안 가이던스도 최종 가이던스도 아니고, CDRH가 생성형 AI 기기를 어떻게 규제할지에 관한 정책 변경을 제안하거나 시행하려는 것도 아니며, 앞으로 시판 허가 신청서에 어떤 근거를 담아야 하는지에 관한 규제 기대치를 알리려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여기 적힌 접근법이 FDA가 이미 가진 법적 권한 안에 있는지조차 다루지 않는다.

마지막 단서가 특히 무겁다. 규제기관이 어떤 구상을 내놓으면서 그것을 실행할 권한이 자기에게 있는지를 판단 보류로 남겨 뒀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문서를 규칙으로 읽으면 안 된다. 앞으로 나올 이야기는 전부 "검토하고 있다", "의견을 구한다"로 끝나는 문장들이다. 다만 무엇을 고민하는지가 본문과 부록을 합쳐 서른 쪽 남짓에 걸쳐 펼쳐져 있고, 그 고민의 방향은 꽤 또렷하다.

이 지면에서 같은 줄기를 따라온 독자라면 위치가 잡힐 것이다. 2월에는 FDA가 허가한 AI 의료기기가 1천 건을 넘는데 LLM 기반은 0건이라는 공백을 다뤘다. 이 숫자는 뒤에 나올 1,357건과 집계 주체도 마감 시점도 다르다. 6월에는 식약처가 세계 최초로 생성형 AI 의료기기를 3등급으로 허가한 배경을, 7월에는 FDA가 처음 통과시킨 LLM 기기 UpDoc이 어떤 설계로 문을 통과했는지를 봤다. 이번 문서는 그 공백을 무슨 틀로 메울 생각인지에 대한 FDA의 첫 공개 답안지다.


위험을 두 축으로 다시 그린 격자

FDA가 제안한 2축 위험 격자: 기기가 하는 일과 틀린 출력을 믿었을 때의 위해
FDA가 제안한 2축 위험 격자: 기기가 하는 일과 틀린 출력을 믿었을 때의 위해

문서의 4장은 위험을 가로세로 두 축의 격자에 놓는다. 가로축은 기기가 하는 일이다. 왼쪽 끝은 비지시적 정보다. 앞으로 심혈관 사건이 생길 확률을 점수로 보여 주는 기능이 여기 해당한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행동을 지시하는 정보, 의료진이 계속 지켜보는 가운데 행동하는 기능,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상태에서 스스로 행동하는 기능 순으로 옮겨 간다. 세로축은 그 출력이 틀렸을 때, 그리고 사용자가 그것을 믿고 따랐을 때 생기는 위해의 심각도다. 위험은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갈수록 커진다.

격자 자체는 새롭지 않다. FDA도 다른 가이던스에 쓰던 행렬에서 형태를 빌려 왔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 격자 위에서 어디에 선을 그을지를 두고 무엇을 묻고 있는지다.

첫째, 정보 제공과 행동 지시 사이에 딱 떨어지는 경계가 없다는 점을 문서가 인정한다. FDA가 든 예시는 혈압약 리시노프릴이다. "혈압이 목표치 위에 머무르면 리시노프릴 용량을 올리기도 한다"는 일반 정보에서 시작해, "이런 상황에서는 임상의가 용량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로 사용자의 처지에 붙고, "용량을 올리시길 권합니다"로 특정 행동을 지지하다가, "리시노프릴을 10mg에서 20mg으로 올리세요"라는 구체적 지시에 도달한다. 같은 약, 같은 방향의 조언인데 네 문장의 무게가 다르다.

둘째, 그래서 지시성을 단어로 판정하지 않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적었다. "권합니다", "해야 합니다", "고려해 보세요" 같은 표현이 들어갔는지가 아니라 출력의 내용과 맥락으로 보겠다는 쪽이다. 이어지는 한 문장이 업계에는 꽤 아플 수 있다. 환자를 상대하는 기능이 "의사와 상의하세요"라거나 "저는 의료 전문가가 아닙니다" 같은 문구를 덧붙였다고 해서 지시성이 덜해지지는 않는 것으로 볼지를 함께 검토 중이라고 했다. 지금 시중의 건강 상담형 챗봇 대부분이 위험을 덜어 내는 방식으로 쓰고 있는 바로 그 문장이다. 아직 결정이 아니라 검토 항목이지만, 여기에 선이 그어지면 면책 문구 한 줄로 규제를 비켜 가던 설계가 통하지 않게 된다.

셋째, 같은 기능이라도 받는 사람이 환자면 세로축에서 위로 올려 볼 수 있다는 안을 내놨다. 의료진은 출력의 한계를 알아채고 다른 임상 정보와 견주어 틀린 답을 걸러 낼 수 있지만, 환자는 그 훈련이 없으니 틀린 답을 그대로 믿고 치료를 미루거나 잘못된 자가 처치로 갈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문서는 여기서 한 발 물러선다. 임상 정보가 널리 퍼지는 데서 오는 이득, 환자가 자기 문제에 참여하게 되는 가치, 환자의 판단력을 낮잡아 보는 온정주의를 피할 필요도 같이 적어 두고 의견을 구했다.

넷째, 측정과 신호처리 기능에는 별도 논리가 붙는다. 체외진단이나 측정 기능은 성격상 비지시적 정보를 내놓지만, 사용자가 그 값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스스로 따져 볼 수 없다. 틀린 값을 알아보고 피할 방법이 없으니 세로축에서 위로 밀린다. FDA는 각주에서 이 판단이 임상의사결정지원(CDS) 제외 조항의 독립적 검토 기준과 통한다고 적었다. 미국 연방식품의약품화장품법 520(o)(1)(E)는 일정 요건을 모두 갖춘 CDS 소프트웨어를 기기 정의에서 빼 주는데, 그 요건 가운데 하나가 의료진이 소프트웨어가 내놓은 권고의 근거를 독립적으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요건 하나만으로 제외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다만 검토 가능성을 규제 여부의 갈림길로 쓰던 잣대를 이번에는 위험의 높낮이를 재는 데도 가져다 쓴 셈이다.

다섯째, 대화가 길어지는 상황을 따로 다룬다. 대화형 기기는 정보 제공으로 시작했다가 주고받는 사이에 행동 지시로 넘어갈 수 있다. FDA는 개별 기능 단위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법한 대화 궤적 전체를 놓고 위험을 보는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여기서 사용목적이라는 규제의 기본 단위가 흔들린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행동이 생겨나는 기기의 사용목적을 어떻게 문장으로 못 박을 것인가. 문서는 답을 내지 않고 다섯 번째 질문으로 남겨 뒀다.

여섯째, 응급실에 가라 말라를 판단하는 기능은 양쪽 오류를 다 센다. 보내야 할 환자를 안 보내면 치료가 늦어지고, 필요 없는 환자를 계속 보내면 불안과 불필요한 검사, 응급실 과밀이 쌓인다. 문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적었다. 헛걸음이 반복되면 의료에 대한 신뢰가 깎이고, 그러면 정작 가야 할 때 안 가게 된다.


의사 면허 심사를 기기에 옮겨 놓으면

5장이 이 문서에서 가장 구체적인 부분이다.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심사는 입력과 출력이 정해진 범위 안에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대표성 있는 표본을 뽑아 넓게 시험하면 나머지도 짐작할 수 있다. 생성형 AI에서는 그 전제가 무너진다. 들어올 수 있는 입력이 사실상 무한하니 표본으로 덮는다는 발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비유가 사람 의사다. 이 발상이 FDA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문서는 각주로 세 갈래의 선행 논의를 밝혀 뒀다. Patel과 Blumenthal은 지난 3월 JAMA Health Forum에서 생성형 AI가 지금의 의료기기 규제 틀로 다루기에는 너무 넓고 적응적이고 불투명하니 의학 교육과 면허 시험, 감독하 진료, 주기적 재평가를 본뜬 역량 기반 규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Bergman과 Wachter와 Emanuel은 올해 JAMA에서 자율 임상 AI에 진료 범위를 정하고 기한이 있는 인증을 주자는 면허형 틀을 제안했다.

세 번째 갈래가 이 비유의 약점을 짚는다. Freyer 등은 지난해 Nature Medicine에서, 사람 의사가 기준에 못 미쳤을 때는 직업적·법적·평판상의 대가를 치르는데 기기에는 그에 해당하는 장치가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잘못된 생성형 AI 기기에도 그런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FDA는 이 반론을 문서 안에 그대로 실어 두기만 하고, 책임 장치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지 않았다.

의사를 심사하는 방식 자체는 이렇다. 의사도 마주칠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시험받고 면허를 따지는 않는다. 대신 밑바탕 지식과 추론을 구조화된 시험으로 확인하고(의사 국가시험, 전문의 자격시험), 실제 진료 현장에서 감독을 받으며 조금씩 독립성을 늘려 가고(실습, 전공의 수련, 전임의 과정), 독립 진료를 시작한 뒤에도 계속 평가받는다. 이 구조를 기기에 옮기면 시판 전 평가는 두 덩이가 된다. 비임상 기기 벤치마킹과 임상 확인이다.

중요한 전제가 하나 붙는다. 평가 대상은 실제로 배포될 형태의 최종 사용자 대면 기기이지 그 밑에 깔린 파운데이션 모델이나 떼어 낸 부품이 아니다. 기반 모델이 어떤 벤치마크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는 답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량 기반 시판 전 평가의 두 단계: 벤치마킹 요소 10개와 임상 확인 5단계
역량 기반 시판 전 평가의 두 단계: 벤치마킹 요소 10개와 임상 확인 5단계

벤치마킹 요소는 네 묶음 열 항목이다.

안전 묶음에는 셋이 들어간다. S.1은 위급한 임상 상태를 알아보고 제때 명확하게 상향 조치를 취하는지를 본다. 시험 방법으로 여러 차례 주고받는 모의 진료를 예로 들었는데, 사용자가 증상을 축소해 말하거나 이송을 거부할 때 안이한 안심으로 넘어가지 않고 버티는지까지 본다. S.2는 기기가 자기 사용목적 밖의 요청을 알아채고 거절하는지다. 여기에는 적대적 프롬프트, 프롬프트 주입, 감정적 조작 시나리오, 그리고 한 턴씩 보면 범위 안인데 대화 전체로는 범위를 벗어나는 상황이 포함된다. S.3은 확신의 표현을 다룬다. 근거가 다투어지거나 아직 정리되지 않았거나 자기 지식 밖인 사안을 확신에 찬 말투로 내놓는 것을 안전 실패로 본다고 명시했다.

임상 숙련 묶음은 넷이다. E.1은 최신 지침, 금기, 약물 상호작용, 그리고 임신부나 소아, 신장·간 기능이 떨어진 환자처럼 집단마다 달라지는 고려사항을 아는지다. E.2는 불완전하고 모호한 정보를 모아 판단하는 능력인데, 처음에 별것 아닌 정보가 더 심각한 병을 가리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결론을 닫아 버리는지 잡아내는 시나리오가 예로 들어 있다. E.3은 숫자다. 체중과 신기능에 따른 용량 계산, 단위 환산, 그리고 옮겨 적다 틀린 값을 임상적으로 말이 안 되는 값으로 알아보는 일이 여기 들어간다. E.4는 전달력인데, 자동화 편향이 항목으로 들어가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기기의 말이 매끄럽고 권위 있게 들린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자가 검토 없이 받아들이는 현상을 재겠다는 것이다.

일반화 묶음은 둘이다. R.1은 같은 뜻을 다르게 표현했을 때, 정보 순서를 바꿨을 때, 대화가 길어졌을 때도 결과가 흔들리지 않는지를 본다. 문장 표현이 조금 달라지는 것은 봐줄 수 있지만 상향 조치나 거절, 진단 결론 같은 안전 관련 행동이 흔들리면 실패로 친다. R.2는 하위 집단별 성능인데, 인구학적 구분뿐 아니라 표준이 아닌 방언과 억양, 구어 표현, 낮은 문해력과 건강 문해력까지 명시했다.

마지막 A.1은 에이전틱 기기에만 붙는다. 여러 단계를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기기가 그 계획이 사용목적이나 안전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을 알아채는지, 도구를 제대로 쓰고 도구가 잘못된 값을 돌려줬을 때 알아보는지, 되돌릴 수 없는 조치 앞에서 사람이 확인하는 지점을 지키는지, 사용자 입력뿐 아니라 검색해 온 문서와 도구 출력에 숨은 프롬프트 주입에 버티는지를 본다.

벤치마킹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5장 C절의 전제다. 그래서 임상 확인이 붙는데, 문서가 명확히 적어 둔 한 줄이 여기 있다. 임상 확인이 모든 경우에 전향적 임상연구를 요구하지는 않을 수 있다. 대신 환자 노출과 엄격성이 낮은 쪽부터 다섯 단계를 늘어놓았다. 이미 모아 둔 실제 환자 입력에 기기를 돌려 보는 후향 평가, 실제 진료 흐름 안에서 돌리되 출력을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고 기록만 남기는 섀도 배포, 훈련된 배우가 정해진 시나리오를 연기하는 표준화 환자, 독립적인 임상의가 실제 사례와 기기 출력을 견주어 판정하는 방식, 그리고 전향적 임상연구와 경우에 따라 무작위 대조시험이다.

무엇과 견줄지도 다시 정해야 한다. 열린 형태의 출력에는 정답이 하나만 있지 않다. 그래서 FDA는 자격 있는 임상의 패널의 합의, 또는 현업에서 일하는 중간 수준 임상의를 비교 기준으로 삼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적었다. 기기가 같은 과제에서 기준이 되는 임상의만큼 하거나 그보다 나은지를 묻는 방식이다. 여기에 따라붙는 질문이 만만치 않다. 비교 대상이 일반의여야 하는가 전문의여야 하는가. 그리고 기기 혼자의 성적을 재야 하는가, 임상의와 기기가 함께 일한 팀의 성적을 재야 하는가.


허가 전 확실성을 시판 후로 넘길 수 있나

6장에 이 문서에서 사업적으로 가장 무거운 문장이 있다. CDRH는 시판 후 감시에 더 크게 기대는 대신, 이 기기가 주는 이득이 위험보다 큰지를 허가 시점에 덜 확실하게 알아도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하고 있다.

맞바꿈의 모양이 여기서 나온다. 허가 전에 쌓아야 할 근거의 무게를 덜어 주는 대신, 출시 후에 계속 재는 의무를 지운다. 제안된 감시 방법은 셋이다. 정해진 주기와 정해진 사건이 생겼을 때 시판 전에 못 박아 둔 벤치마크 기준으로 다시 재는 주기적 재벤치마킹, 독립적인 임상의가 실제 입출력 표본을 정해진 기준에 맞춰 검토하는 방식, 그리고 입력 인구나 데이터 환경, 기반 모델 구성요소가 바뀌면서 성능이 내려앉는지를 감시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가 성립하려면 시판 전 벤치마킹이 잘 설계돼 있어야 한다. 나중에 무언가를 바꿨을 때 같은 잣대로 다시 재야 하기 때문이다. 문서도 시판 전 역량 평가가 이후 변경을 재는 기준선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적었다. 사전 변경관리계획(PCCP)은 그 위에서 일부 변경을 새 허가 신청 없이 처리하는 장치로 언급된다. 앞으로 어떤 변경을 어떻게 검증해 반영할지를 미리 적어 승인받아 두는 문서다.

가장 까다로운 대목은 변경의 출처다. 문서는 변경을 셋으로 나눈다. 회사가 의도적으로 실행하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재학습, 기기가 사용 중에 스스로 적응하며 조금씩 일어나는 모델 진화, 그리고 외부 회사가 만든 파운데이션 모델이 바뀌면서 예고 없이 넘어오는 변경이다. 세 번째가 문제다. 바꾼 주체가 기기 회사가 아니다. FDA는 24번 질문에서 회사가 그런 변경을 어떻게 제때 알아채고 대응할 수 있는지, 계약이든 기술적 수단이든 PCCP든 무엇으로 담보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7장에서 나온 자발적 장치가 그 답의 한 갈래다. 파운데이션 모델 기기 마스터파일(MAF)이라고 이름 붙였다. 기기 마스터파일은 원래 부품이나 소재 공급자가 자기 기술 정보를 FDA에 비밀로 제출해 두고, 그 부품을 쓰는 회사가 허가 신청서에서 참조할 수 있게 하는 오래된 제도다. 같은 그릇에 모델 개발사가 모델 카드나 시스템 카드를 넣어 두자는 발상이다. FDA가 각주에 적어 둔 목록은 구조와 학습 데이터 출처, 의료 맥락에서 알려진 실패 양상,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하위 집단별 벤치마크 결과, 모델에 심어 둔 안전 제약과 가드레일, 업데이트 통지 약속, 감사 로그 제공 여부다.

문서가 스스로 약점을 인정한 것도 여기다. 25번 질문은 참여가 자발적인데 모델 개발사가 안전 관련 정보를 굳이 공개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점을 그대로 적어 놓고, 그럼에도 이 제도가 심사에 쓸모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대안은 없는지를 묻는다. 규제기관이 자기가 던진 안의 인센티브 구조가 약하다는 사실을 질문 문장에 넣어 둔 셈이다.


같은 주에 나온 숫자, 1,357 대 3

시판 후 감시로 무게를 옮기는 맞바꿈은 감시가 실제로 돌아간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한다. 그 전제를 정면으로 시험하는 자료가 하루 뒤에 나왔다.

8월 19일 PLOS Digital Health에 실린 분석은 2025년 12월 5일까지 FDA가 허가하거나 승인한 AI/ML 의료기기 1,357건을 훑었다. 명단은 FDA 기기 데이터베이스에 미국영상의학회 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가 운영하는 AI Central 목록을 합쳐 만들었고, 여기에 ClinicalTrials.gov와 PubMed를 연결해 각 기기에 붙은 임상연구와 논문을 셌다. 이 1,357이라는 수는 그 두 명단을 그 시점까지 합쳐 센 값이라는 뜻이니, 다른 기준으로 센 숫자와 곧장 견주면 안 된다.

근거의 무게를 시판 후로 옮기는 맞바꿈, 그리고 허가된 AI 의료기기 1,357건의 근거 실측치
근거의 무게를 시판 후로 옮기는 맞바꿈, 그리고 허가된 AI 의료기기 1,357건의 근거 실측치

숫자는 이렇다. 등록된 전향적 임상시험과 연결된 기기가 34건으로 2.5퍼센트다. 그중 결과를 게시한 것이 12건, 동료심사 논문으로 나온 것이 12건이니 각각 0.9퍼센트다. 사망이나 이환, 재입원처럼 환자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본 기기는 3건, 0.2퍼센트다. 영상의학이 1,059건으로 전체의 78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이 분야에서 전향 연구가 붙은 비율은 1퍼센트에 못 미친다. 마취과는 허가된 기기가 22건 있는데 등록된 임상시험이 하나도 없다.

임상시험이 있는 34건도 들여다보면 빠진 사람들이 보인다. 임신부를 제외한 비율이 심혈관 분야 42퍼센트, 영상의학 33퍼센트다. 소아는 사실상 전면 배제됐고, 하위 집단 분석을 하나라도 보고한 연구는 9건, 27퍼센트에 그쳤다.

먼저 두 자료가 같은 것을 재지 않는다는 점부터 빼 두자. PLOS 분석이 센 것은 임상시험 등록부와 논문 데이터베이스에 흔적을 남긴 연구다. FDA가 제안하는 감시는 재벤치마킹, 표본 검토, 드리프트 감시이고, 이런 활동은 임상시험으로 등록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숫자를 근거로 지금까지 시판 후 감시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 허가된 뒤 그 기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바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회사 안에서 무엇을 재고 있든 그것은 회사 안에 머문다. FDA가 이번에 제안하는 맞바꿈은 바로 그 바깥 기록에 허가의 무게를 얹는 일이다. 성패는 그 기록을 누가 어떤 강제력으로 만들게 하느냐에 걸린다. 문서가 B절에서 임상의, 의료기관, 지불자, 전문학회, 표준기구, 다른 연방·주 기관까지 이해관계자를 늘어놓고 각자의 역할을 물은 것도 회사 하나에 감시를 맡겨서는 굴러가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그러면서 21번 질문에서 그 역할 분담이 제조사 책임을 흐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를 함께 물었다. 책임을 나누면서 흐리지 않는 방법을 찾는 일인데, 문서 안에는 답이 없다.


식약처는 회사를 인증하는 쪽으로 갔다

같은 달 국내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다른 각도로 건드렸다.

8월 12일 식약처가 「디지털의료기기 우수 관리체계 인증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발간했다. 디지털의료제품법에 근거한 제도로, 인증 세부기준과 신청·평가 절차를 담았다. 평가 영역은 넷이다. AI 제어조치, 안전관리, 전자적 침해행위 예방 및 대응, 품질관리다. AI 제어조치에는 레드팀 방식의 취약점 점검과 임상 전문가가 참여하는 거버넌스 운영이 들어가고, 안전관리에는 AI 설명가능성 정보 제공이 들어간다. 인증을 받은 회사는 디지털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체계(GMP) 적합판정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고, 인허가 신청 때 임상시험 평가자료를 포함한 일부 제출서류를 면제받거나 다른 자료로 대체할 수 있다.

두 나라의 접근을 나란히 놓으면 대상이 다르다. FDA는 제품을 시험한다. 벤치마킹도 임상 확인도 배포될 형태의 기기 그 자체를 겨눈다. 식약처는 회사를 인증한다. 개발과 유지, 안전관리 역량이 검증된 회사라면 제품별 서류를 덜 받겠다는 구조다. 그러면서 실사용 평가로 제품의 유효성을 확인한다고 밝혔으니, 근거 생성의 무게를 시판 후로 옮긴다는 방향은 FDA의 6장과 겹친다.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회사를 인증하는 방식은 심사 부담을 줄이는 대신 인증 이후 그 회사가 내놓는 개별 제품의 편차를 잡아내기 어렵고, 제품을 시험하는 방식은 그 반대다. 다만 두 규제기관이 같은 시기에 같은 곳으로 부담을 옮기고 있다는 사실은 기록해 둘 만하다. 시판 전에 다 확인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출발해, 시판 후를 어떻게 붙잡을지로 문제를 옮겼다.


숨빗AI와 UpDoc은 격자 어디에 놓이나

2축 격자를 국내 사례에 대 보면 규제 부담이 어떻게 갈릴지 짐작이 간다.

먼저 범위를 좁혀 두자. 이 문서는 생성형 AI가 들어간 기기 기능만 다룬다. 루닛처럼 영상에서 병변 위치를 짚어 주는 판독 보조를 주력으로 하는 회사라면 지금 당장은 논의 밖이다. 국내 의료 AI 매출의 상당 부분이 아직 이 영역에 있으니, 이번 문서를 업계 전체가 흔들릴 사안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판독 결과를 문장으로 풀어 주는 기능을 얹는 순간 선을 넘는다.

숨빗AI의 AIRead-CXR은 흉부 X선 예비소견서를 생성한다. 읽는 사람은 영상의학과 의사다. FDA의 축으로 옮기면 의료진 대면이고, 소견서 문장은 진단을 확정하지도 처방을 내지도 않으니 가로축에서는 왼쪽에 가깝다. 다만 세로축에서 마냥 아래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예비소견이 놓친 병변을 그대로 굳혀 버리면 결과가 무겁고, 문서가 E.4에서 짚은 자동화 편향이 정확히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매끄럽게 쓰인 소견서일수록 검토 없이 통과될 확률이 올라간다.

UpDoc은 반대편에 가깝다. 환자와 직접 대화하면서 인슐린 용량을 안내한다. 환자 대면이니 세로축이 올라가고, 용량이라는 구체적 숫자를 제시하니 가로축에서도 행동 지시 쪽이다. 흥미롭게도 FDA가 4장에서 위해가 큰 쪽의 예시로 든 것이 정확히 인슐린 용량 조정이다. 지난 7월 이 지면에서 다뤘듯 UpDoc은 대화는 LLM에 맡기고 용량 계산은 결정론적 알고리즘에 맡기는 이중 구조로 510(k)를 통과했다. 이번 격자에 놓고 보면 그 설계가 왜 통했는지가 더 분명해진다. 격자에서 가장 위험한 칸에 놓일 기능을 LLM 바깥으로 빼내면, 정작 심사받아야 할 생성형 부분은 낮은 칸으로 내려앉는다.

여기서 국내 회사들이 계산할 것이 나온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다면 지금부터 쌓아야 할 것은 논문 한 편이 아니라 벤치마크 자산이다. 문서가 예로 든 시험 방법들, 그러니까 증상을 축소해 말하는 사용자를 상대로 한 다회차 모의 진료, 프롬프트 주입 시나리오, 같은 뜻을 다르게 표현한 입력 묶음, 방언과 낮은 건강 문해력을 반영한 하위 집단 시험은 대부분 기존 임상 데이터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별도로 설계해야 하는 자산이고, 시판 후 재벤치마킹의 기준선이 되니 한 번 잘 만들어 두면 계속 쓴다. FDA가 10번 질문에서 회사가 직접 만든 벤치마크의 독립성과 시험에 맞춰 최적화될 위험을 물은 것도 이 자산이 그만큼 결정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 더. 국내 회사가 미국 심사에서 외부 회사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쓴다면, 그 모델이 언제 어떻게 바뀌는지를 알아낼 수 있는 계약이 기술 문서만큼 중요해진다. MAF 제도가 자발적으로 남는다면 모델 공급자의 협조를 확보하는 일은 회사가 알아서 풀어야 할 문제로 남는다.

10월 19일까지 도켓에 쌓이는 것이 다음 문서의 재료가 된다. FDA가 26개나 되는 질문을 던져 놓았다는 것은 답이 아직 비어 있다는 뜻이다. 벤치마크를 누가 만들고 누가 검증하느냐, 파운데이션 모델 공급자에게서 무엇을 받아 낼 수 있느냐 같은 대목은 지금 의견을 낸 쪽의 문장이 그대로 남을 여지가 큰 자리다. 몇 년 뒤 자기 회사가 채워야 할 항목을 다른 누군가가 써 놓은 것으로 받아 읽게 될지 여부가 지금 두 달에 걸려 있다.


출처

YS

신윤섭

데이너스 대표 | AI 교육 & AX 컨설팅

90개 이상의 AI/AX 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50여 교육·협업 기관에서 강의했습니다. 강남세브란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다양한 조직의 AI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AI 교육이 필요하신가요?

조직에 맞는 맞춤형 AI/AX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해드립니다. 커리큘럼 상담부터 시작해보세요.

같은 주제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