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대 의료원이 20여 년간 쌓인 뇌 CT, MRI 524만 장을 그대로 먹여 만든 AI가 나왔다. 이름은 NeuroVFM. 실제 병원에서 1주일간 조용히 돌려 본 실증에서 이 모델은 응급 여부를 가리는 정확도에서 GPT-5를 21점 차로 앞섰고, 판독 보고서 초안을 쓰는 비용은 24분의 1이었다. 그런데 논문 저자들은 코드 라이선스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의료기기가 아님. 임상 판단에 쓰지 말 것." 세계 최고 성능과 이 한 줄 사이의 거리가, 지금 의료 AI 비즈니스의 실제 지형을 보여 준다.
성능부터 보면, 이건 좀 이상한 결과다
2026년 7월, Nature Medicine에 뇌영상 AI 한 편이 실렸다. 제목은 "Health system learning enables generalist neuroimaging models", 미시간대 신경외과 머신러닝 연구실(MLNeurosurg)이 내놓은 NeuroVFM이다. 결과만 떼어 놓고 보면 몇 군데 눈이 멈춘다.
먼저 진단 성능이다. 연구진은 뇌 CT 82종, MRI 74종, 합쳐서 156가지 진단 과제를 놓고 모델을 평가했다. 여기서 NeuroVFM은 CT AUROC 92.68, MRI AUROC 92.49를 기록했다. AUROC는 모델이 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얼마나 잘 갈라내는지를 0.5(찍기)에서 100(완벽) 사이 값으로 나타낸 지표인데, 90을 넘으면 임상적으로 쓸 만하다고 본다. 뇌출혈처럼 흔한 소견 하나를 잘 잡는 모델은 많지만, 서로 다른 156가지 진단에서 고르게 90선을 넘긴 범용 모델은 드물었다.
진짜 화제가 된 대목은 GPT-5와 붙인 부분이다. 연구진은 병원 전산망 안에서 1주일 동안 들어오는 실제 검사 1,155건을 대상으로 조용한 실증(silent trial)을 돌렸다. 조용한 실증이란 AI의 판단을 화면에 띄우거나 진료에 반영하지 않고, 뒤에서 예측만 기록해 정답과 맞춰 보는 방식이다. 환자에게 위험이 가지 않으면서도 실제 데이터로 성능을 재는 표준적인 방법이다. 이 실전 조건에서 NeuroVFM은 응급 여부를 가리는 균형 정확도 92.6%를 냈고, 같은 과제에서 GPT-5는 71.2%에 그쳤다. 격차가 21.4%포인트다.
한쪽은 뇌영상만 파고든 전문 모델, 다른 쪽은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학습한 범용 대형모델이다. 상식적으로는 더 크고 더 많이 배운 GPT-5가 앞서야 할 것 같은데, 결과는 정반대로 벌어졌다. 이 한 장면이 이 논문을 특별하게 만든다.
비결은 모델이 아니라 데이터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성능의 출처를 따라가면 두 글자로 요약된다. 데이터다. 정확히는, 데이터를 '고르지 않고' 통째로 쓴 방식이다.
의료 AI의 관행은 오랫동안 이랬다. 잘 정리된 데이터셋을 만든다. 영상마다 전문의가 정답을 달고, 화질 나쁜 것과 애매한 것은 빼고, 특정 질환에 맞춰 표본을 고른다. 깔끔한 교과서를 만들어 모델을 가르치는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만든 교과서가 진료 현장의 어수선함을 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실제 병원에는 촬영이 잘못된 영상, 금속 인공물이 낀 영상, 진단이 애매한 경계선 사례가 잔뜩 섞여 들어온다.
NeuroVFM은 반대로 갔다. 미시간대 의료원이 20여 년간 실제 진료에서 찍은 뇌 CT와 MRI 524만 장, 검사 건수로 566,915건을 정제 없이 그대로 학습에 부었다. 연구진이 붙인 이름이 '헬스 시스템 러닝(health system learning)'이다. 한 병원 시스템이 오래 진료하며 자연스럽게 쌓은 날것의 데이터를, 정리하지 않은 상태로 학습 재료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걸 가능하게 한 학습 기법이 Vol-JEPA다. 이름이 낯설지만 발상은 단순하다. 사람에게 정답을 달게 하지 않고, AI가 스스로 문제를 내고 푼다. 3차원 뇌영상을 작은 조각으로 잘라 일부를 가린 뒤, 가려진 부분이 어떤 모습일지 모델이 예측하게 한다. 이때 픽셀 하나하나를 그대로 복원하는 대신, '의미 수준'에서 맞히도록 설계했다. 화질 잡음까지 통째로 외우는 게 아니라 해부학적 구조와 병변의 패턴을 익히게 만든 것이다. 라벨을 달 사람이 필요 없으니, 정답 없는 500만 장을 그대로 삼킬 수 있었다.
여기서 비즈니스 관점의 진짜 메시지가 나온다. NeuroVFM의 경쟁력은 새로운 신경망 구조가 아니라, 남들이 갖지 못한 데이터를 가진 데서 나왔다. 20년치 진료 기록을 통째로 학습에 쓸 수 있는 병원 시스템은 세상에 몇 없다. 모델 아키텍처는 논문과 함께 공개돼 누구나 베낄 수 있지만, 미시간대의 524만 장은 복제되지 않는다. 의료 AI의 해자가 알고리즘에서 임상 데이터의 규모와 깊이로 옮겨 가고 있다는 신호다.
전문 모델이 범용 LLM을 이긴 게 우연이 아닌 이유
GPT-5가 뇌영상 트리아지에서 21점이나 뒤진 결과를 두고 "역시 의료는 전문 모델"이라고 정리하면 절반만 맞다. 왜 이렇게 벌어졌는지를 봐야 이 결과를 다른 분야에 함부로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
GPT-5 같은 범용 대형모델은 이미지를 언어로 번역해 이해하는 데 강하다. 반면 뇌 CT나 MRI는 3차원 부피 데이터다. 미세한 밀도 차이, 좌우 비대칭, 슬라이스를 넘나드는 병변의 연속성 같은 정보가 판독의 핵심인데, 이런 건 텍스트로 옮기는 순간 상당 부분 사라진다. NeuroVFM이 애초에 3차원 부피를 통째로 다루도록 설계된 반면, 범용 모델은 이 3차원 정보를 온전히 소화할 통로 자체가 좁았다. 뇌영상이라는 특정 지형에서는 전문 모델이 구조적으로 유리했다는 뜻이다.
경제성 지표는 이 차이를 더 실감 나게 만든다. 판독 보고서 초안을 만드는 데 드는 추론 비용이 GPT-5는 NeuroVFM의 24배가 넘었고, 그만큼 탄소 배출도 23배 이상 많았다. 병원이 하루에 찍는 영상이 수백, 수천 장인 것을 생각하면, 건당 비용 차이는 연 단위로 눈덩이가 된다. 성능이 앞서면서 운영비까지 20배 넘게 싸다면, 적어도 뇌영상 판독 보조라는 좁고 반복적인 과제에서는 범용 API를 불러 쓰는 방식이 답이 아닐 수 있다.
이 대목은 의료 AI를 사업으로 하려는 쪽에 실용적인 질문을 남긴다. 외부 대형모델 API에 올라타 제품을 만들 것인가, 자기 도메인 데이터로 전용 모델을 키울 것인가. NeuroVFM은 적어도 영상진단이라는 영역에서는 후자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세계 최고 성능인데, 왜 팔 수 없나
여기까지만 보면 미시간대가 곧 제품을 내고 시장을 흔들 것 같다. 그런데 연구진이 공개한 라이선스가 이야기를 반대로 돌린다. 코드는 MIT 라이선스로 열어 두었지만, 정작 성능의 핵심인 모델 가중치는 CC-BY-NC-SA 4.0, 즉 비상업 조건이 걸려 있다. 접근하려면 기관 이메일로 신청해야 하고, 문서 어디에도 판매나 상용 서비스는 없다. 저장소에는 한 줄이 못박혀 있다. "연구용으로만. 의료기기 아님. 임상 의사결정에 쓰지 말 것."
세계 최고 수준의 뇌영상 AI가 스스로 "나는 의료기기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이 간극이 지금 의료 AI 산업의 구조를 압축해서 보여 준다.
이유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규제다. 미국에서 진단 결과에 개입하는 소프트웨어가 임상에 쓰이려면 FDA의 의료기기 소프트웨어(SaMD)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156가지 진단을 한꺼번에 하는 범용 모델은 심사 단위를 어떻게 끊을지부터 난감하다. FDA 승인은 대체로 "이 질환, 이 조건"처럼 좁게 정의된 용도(indication)에 대해 내려지기 때문이다. 만능에 가까운 모델일수록 오히려 규제의 그릇에 담기 어렵다.
다른 하나는 성능의 한계 그 자체다. 1주 실증에서 NeuroVFM의 민감도는 86.5%였다. 응급으로 분류해야 할 중대 소견 155건 가운데 21건을 놓쳤다는 뜻이다. 100건 중 13건 남짓을 지나친 셈인데, 뇌출혈이나 대혈관 폐색처럼 몇 분이 생사를 가르는 소견에서 이 정도 누락은 단독 판독을 맡기기엔 부담스럽다. 저자들이 이 모델을 '자율 스크리닝'이 아니라 '의사결정 보조'로 못박은 이유가 여기 있다.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하고, AI는 우선순위를 매기거나 놓치기 쉬운 것을 상기시키는 역할에 머문다.
결국 이 논문은 두 개의 사실을 동시에 말한다. 연구 수준에서 의료 AI의 성능은 이미 놀라운 곳에 와 있다. 그러나 그 성능을 환자에게 실제로 쓰는 제품으로 바꾸는 구간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고, 규제와 안전이라는 문턱이 그 사이를 가르고 있다.
루닛과 뷰노가 NeuroVFM에서 읽어야 할 것
국내 영상 AI 기업들에게 NeuroVFM은 위협이자 확인이다.
확인부터 보면, 이들이 걷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방증이 된다. 루닛과 뷰노는 좁게 정의된 용도로 FDA 510(k)와 식약처 허가를 하나씩 따내며 제품을 시장에 올려 왔다. 느리고 답답해 보여도, NeuroVFM이 스스로 넘지 못한 '의료기기가 되는 문턱'을 이들은 이미 여러 번 넘었다. 연구 성능과 상용 제품 사이의 거리를 실제로 건너 본 경험, 그 자체가 자산이다.
위협은 데이터 쪽에서 온다. NeuroVFM이 증명한 것은 오래 진료한 병원 시스템의 날것 데이터가 곧 경쟁력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에는 미시간대 같은 대형 학술 의료원이 곳곳에 있고, 이들이 각자의 20년치 데이터로 전용 모델을 키우기 시작하면 판도가 달라진다. 국내 기업이 병원과 맺는 데이터 협력의 깊이, 그리고 그 데이터를 정제 없이도 학습에 쓸 수 있는 기술력이 앞으로 몇 년의 승부를 가를 변수가 된다.
한 가지 덧붙이면, '헬스 시스템 러닝'은 데이터를 많이 가진 병원이 스스로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병원은 AI 회사의 고객이었지만, 충분한 데이터와 연구 역량을 갖춘 대형 병원이 직접 모델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다. NeuroVFM이 상업 제품이 아니라 한 대학 의료원의 연구 성과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 가능성을 이미 한 번 보여 준 셈이다.
세계 최고 성능과 "의료기기 아님" 사이의 거리는, 뒤집어 보면 상용 의료 AI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거리를 대신 건너 주는 것이 이들의 일이고, NeuroVFM은 그 거리가 여전히 멀다는 것을 실력으로 증명해 보였다.
출처
- Kondepudi et al., "Health system learning enables generalist neuroimaging models", Nature Medicine, 2026.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1-026-04497-1
- MLNeurosurg/neurovfm (공식 코드 저장소, 라이선스 및 모델 카드). https://github.com/MLNeurosurg/neurovfm
- "Meet NeuroVFM: A New Neuroimaging Foundation Model Trained With Vol-JEPA on Uncurated Clinical MRI and CT Volumes", MarkTechPost, 2026-07-12. https://www.marktechpost.com/2026/07/12/meet-neurovfm-a-new-neuroimaging-foundation-model-trained-with-vol-jepa-on-uncurated-clinical-mri-and-ct-volumes/
- "Brain Scan AI Beats GPT-5 by Over 20 Points in Real-Week Hospital Trial", Tech Times, 2026-07-13. https://www.techtimes.com/articles/320331/20260713/brain-scan-ai-beats-gpt-5-over-20-points-real-week-hospital-trial.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