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7일, 미국 FDA는 머신러닝으로 의료영상을 재서 수치를 내놓는 소프트웨어 전체를 위한 새 분류 칸을 확정했다. 규정 번호는 21 CFR 892.2055, 이름은 "사전 변경관리계획을 갖춘 방사선 머신러닝 기반 정량 영상 소프트웨어"다. 출발점은 3년 전 심장 초음파에서 심박출률을 자동으로 재던 소프트웨어 한 건이었지만, FDA가 이번에 codify한 것은 그 제품이 아니라 앞으로 나올 수많은 AI 영상 계측 소프트웨어가 함께 쓸 규제상의 주소다. 핵심은 하나다. AI 모델을 나중에 고칠 권한을 기기 정의 안에 처음부터 넣어뒀다는 점이다.
심박출률을 재던 소프트웨어가 문을 열었다
이야기는 화려한 생성형 AI가 아니라, 심장 초음파 화면 위에서 벌어지는 아주 실무적인 계측에서 시작한다.
심장이 한 번 뛸 때 좌심실이 품고 있던 피를 몇 퍼센트나 짜내는지를 나타내는 값을 심박출률(ejection fraction, EF)이라고 부른다. 심부전을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숫자다. 원래는 초음파 영상을 본 의료진이 좌심실 경계를 눈으로 그려가며 계산했는데, 사람마다 값이 달라지고 시간도 걸린다. 캡션헬스(Caption Health)가 내놓은 Caption Interpretation Automated Ejection Fraction Software는 이 과정을 머신러닝으로 대신했다. 저장된 심장 초음파 영상을 넣으면 알고리즘이 알아서 좌심실을 찾아내고 EF를 추정해준다.
FDA는 2022년 9월 28일 이 소프트웨어에 대한 De Novo 요청을 받았고, 2023년 2월 24일 이를 2등급(Class II) 의료기기로 분류했다. 여기까지는 흔한 AI 영상 소프트웨어 허가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시기 캡션헬스는 GE 헬스케어에 인수되며 대형 영상장비 회사의 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3년이 지난 2026년 6월, FDA가 이 결정을 정식 규정으로 굳히면서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확정된 것은 캡션헬스 제품 하나가 아니라, 그 제품이 속한 기기 유형(device type) 전체를 위한 새 분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용어를 풀어두자. 정량 영상(quantitative imaging)은 영상을 보고 "있다/없다"를 판정하는 게 아니라, 영상에서 크기나 부피, 밀도 같은 숫자를 뽑아내는 일이다. 좌심실 심박출률, 뇌 특정 영역의 부피, 관상동맥에 낀 플라크의 양, 간에 낀 지방 비율 같은 값이 모두 여기 해당한다. AI가 영상의 어느 부분을 볼지 고르고(view selection), 장기나 병변의 경계를 따내고(segmentation), 기준점을 찍은 뒤(landmarking) 측정값을 내놓는 구조다. FDA가 만든 새 칸의 정식 정의도 정확히 이 세 가지 기능을 콕 집어 적어놨다.

892.2055라는 새 주소가 왜 중요한가
미국에서 1976년 이후에 새로 등장한 의료기기는 별도 조치가 없으면 자동으로 가장 높은 위험 등급인 3등급(Class III)에 배정된다. 3등급은 시판 전 허가(PMA)라는 가장 까다롭고 비싼 심사를 거쳐야 하는 자리다. 위험이 실제로 높아서가 아니라, 분류되지 않은 신기술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이 일단 최고 등급에 던져 넣는 구조다.
De Novo는 이 자동 배정을 끌어내리는 통로다. "이 기기는 위험이 그렇게 높지 않으니 2등급이 맞다"고 FDA를 설득해 새 분류를 만들어내는 절차다. 캡션헬스가 통과한 길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De Novo의 진짜 가치는 개별 제품 허가에 있지 않다. FDA가 De Novo로 어떤 기기를 2등급에 분류하면, 그 기기가 이후 같은 유형 제품들의 선례기기(predicate)가 된다. 뒤따라오는 회사는 더 이상 De Novo나 PMA라는 무거운 심사를 다시 밟을 필요 없이, 이미 열린 분류에 "우리 제품도 본질적으로 같다"고 붙이는 510(k)라는 가벼운 통로를 쓸 수 있다.
이번에 FDA가 21 CFR 892.2055라는 조항을 새로 추가한 것이 바로 이 선례를 영구 주소로 등록하는 작업이다. 이제 "머신러닝으로 방사선 영상을 재서 수치를 내놓는 소프트웨어"라는 유형에는 공식 번지수가 생겼다. 뇌 MRI에서 위축된 부피를 재는 소프트웨어든, 관상동맥 CT에서 플라크를 정량화하는 소프트웨어든, 간 MRI에서 지방 비율을 뽑는 소프트웨어든, 앞으로는 이 892.2055를 가리키며 510(k)로 진입할 길이 생겼다는 뜻이다. 실제로 시장에는 이런 정량 영상 AI가 이미 여럿 나와 있다. 뇌 부피를 재는 아이코메트릭스(icometrix), 관상동맥 플라크를 정량화하는 클리얼리(Cleerly)와 심장 CT 혈류를 계산하는 하트플로우(HeartFlow), 간 조직을 정량화하는 퍼스펙텀(Perspectum) 같은 회사들이 다루는 영역이 정확히 이 분류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다.
변경관리계획을 기기 정의 안에 넣었다
이번 분류가 앞선 여러 AI 영상 허가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이름 뒤에 붙은 꼬리표에 있다. 정식 명칭이 "사전 변경관리계획을 갖춘(with predetermined change control plan)" 정량 영상 소프트웨어다. 변경관리계획(PCCP)이라는 조건이 부가 설명이 아니라 기기 유형의 정의 자체에 박혀 있다.
PCCP가 무엇인지부터 풀어야 한다. AI 모델은 태생적으로 계속 고쳐 쓰고 싶은 물건이다. 새 데이터가 쌓이면 다시 학습시켜 성능을 올리고, 임계값을 조정하고, 대상 환자군을 넓히고 싶어진다. 그런데 전통적인 규제 논리에서는 허가받은 소프트웨어를 의미 있게 바꾸면 원칙적으로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모델을 한 번 손볼 때마다 심사를 새로 밟아야 한다면 AI 의료기기의 개선 속도는 규제 서류 처리 속도에 묶여버린다. 이 병목을 풀기 위해 FDA가 2024년 12월 최종 가이드로 정리한 제도가 PCCP다. 허가 시점에 "우리는 앞으로 이런 범위 안에서, 이런 방법으로 모델을 바꾸겠다"는 계획을 미리 제출해 승인받으면, 그 범위 안의 변경은 매번 새 심사 없이 시행할 수 있게 해주는 약속이다.
지금까지 PCCP는 개별 제품의 허가에 조건으로 얹히는 방식으로 쓰였다. 앞서 소개했던 사례들, 예컨대 심전도 AI나 CDS 소프트웨어 허가에서도 PCCP는 그 제품 하나에 딸린 부속물이었다. 892.2055가 새로운 건, PCCP를 특정 제품이 아니라 기기 유형의 신원 조건으로 못박았다는 데 있다. FDA 문서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PCCP 없이는 애초에 이 분류에 들어올 수 없고, 그러면 다시 자동으로 3등급으로 떨어진다. 다시 말해 이 칸에 들어오려는 회사는 처음부터 "우리 AI를 앞으로 어떻게 고쳐 나갈지"에 대한 계획을 반드시 들고 와야 한다. 개선을 전제로 설계된 분류인 셈이다.
특수통제가 요구하는 문서의 두께
2등급 기기가 3등급의 무거운 심사를 피하는 대신 짊어지는 조건이 특수통제(special controls)다. 일반통제만으로는 안전과 유효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부분을, 유형별로 정해둔 추가 요구사항으로 메우는 장치다. 892.2055의 특수통제를 읽어보면 FDA가 AI 영상 소프트웨어의 어디를 불안해하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FDA가 표로 정리한 위험은 세 가지다. 첫째는 부정확한 출력이 환자에게 잘못된 진단이나 치료로 이어지는 것, 둘째는 PCCP에 따라 모델을 바꾼 뒤 성능이 나빠지는 것, 셋째는 변경 내용을 사용자가 오해해 잘못 쓰는 것이다. 세 위험 중 뒤의 둘이 온전히 "고친 다음"에 생기는 위험이라는 점이 이 분류의 성격을 압축한다.
이를 막기 위한 특수통제는 크게 네 갈래다. 알고리즘의 입력과 출력, 한계를 상세히 기술할 것. 학습 데이터의 주석 방법과 환자 구성을 밝힐 것. 무엇보다 성능 시험을 학습에 쓰지 않은 독립된 데이터로 하되, 오차 지표나 Bland-Altman 도표, dice 계수, 민감도, 특이도 같은 객관적 측정치로 입증할 것. 그리고 이 성능을 환자 인구 집단별로 쪼개서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성별, 나이, 동반질환, 영상 촬영 장비의 종류처럼 결과를 흔들 수 있는 하위 집단마다 성능이 얼마나 되는지를 신뢰구간과 함께 제시하라는 조항이다. AI가 특정 집단에서만 잘 맞고 다른 집단에서 무너지는, 이른바 성능 편향을 겨냥한 요구다.
라벨링 조항은 특히 촘촘하다. 검증된 환자군, 사용자에게 필요한 전문성, 호환되는 영상 장비와 촬영 프로토콜, 성능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을 모두 적어야 한다. PCCP 관련 표시는 별도로 못박혀 있다. 이 기기에 PCCP가 있다는 사실, 실제로 어떤 변경이 적용됐는지, 그리고 버전 이력과 함께 사용자에게 변경을 어떻게 알릴지를 라벨에 담아야 한다. 모델이 조용히 바뀌어 있는데 쓰는 사람은 어제와 같은 소프트웨어라고 믿는 상황을 규제가 미리 차단한 것이다.
문은 열렸지만 면제는 아니다
이 분류가 업계에 주는 신호는 뚜렷하다. 정량 영상 AI를 만드는 회사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는 자동 3등급 배정과 PMA다. 892.2055는 이 유형에 2등급이라는 낮은 등급과 510(k)라는 가벼운 통로를 공식적으로 열어줬다. FDA 스스로도 이번 조치가 "규제 부담을 줄여 혁신 기기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높인다"고 명시했다. 선례기기가 생겼으니 뒤따르는 제품은 앞선 제품과의 동등성만 보이면 된다. AI 영상 계측 분야에 진입하려는 회사들이 규제 경로를 예측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실질적인 이득이다.
다만 열린 문이 곧 활짝 열린 문은 아니다. FDA는 이 유형을 510(k) 면제 대상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고 분명히 적었다. 즉 2등급이 됐어도 시판 전 신고 절차는 여전히 밟아야 한다. 게다가 이 분류에 들어오려면 앞서 본 특수통제, 특히 하위 집단별 성능 입증과 PCCP 문서 일체를 갖춰야 한다. 진입 장벽이 3등급 PMA보다 낮아졌을 뿐, 문서 없이 통과하는 지름길이 생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선 계획과 성능 편향 검증을 처음부터 요구한다는 점에서, 준비가 부실한 제품에는 문턱이 더 또렷해졌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경계도 분명히 그어져 있다. 이 분류는 영상을 재서 수치를 내놓는 소프트웨어를 위한 것이지, 스스로 최종 진단을 내리는 자율 소프트웨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캡션헬스의 EF 소프트웨어가 그랬듯, 여기 담긴 제품들은 임상의의 판단을 돕는 계측 도구에 머문다. 판정의 최종 권한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이 가벼운 경로가 성립한다.
한국의 실시간 학습 규제와 나란히 놓고 보면
이 흐름은 한국 식약처가 앞서 마련한 실시간 학습 AI 의료기기 규제와 겹쳐 읽을 때 의미가 또렷해진다. 식약처도 AI 모델이 허가 이후 계속 학습하며 바뀌는 상황을 규율하기 위해 변경 범위를 사전에 정해두는 방식의 틀을 도입해왔다. 미국과 한국이 서로 다른 법 체계에서 같은 문제, 즉 "허가 시점에 고정된 소프트웨어"라는 낡은 전제와 "계속 학습하는 AI"라는 새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 하고 있는 셈이다.
차이는 접근의 결에 있다. FDA는 이번에 PCCP를 특정 제품 조건에서 기기 유형의 정의로 끌어올렸다. 규제 대상 범주 자체를 "변경을 전제로 한 소프트웨어"로 다시 그린 것이다. 이는 개별 허가를 넘어 분류 체계의 층위에서 AI의 가변성을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한국의 정량 영상 AI 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겨냥한다면, 이제 510(k) 서류에 성능 데이터뿐 아니라 "이 모델을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처음부터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실무적 함의가 생긴다.
남는 것
892.2055는 요란한 조항이 아니다. 심장 초음파에서 심박출률을 재던 소프트웨어 한 건에서 출발해, 정량 영상 AI라는 넓은 범주에 조용히 번지수 하나를 붙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 번지수 안에 변경관리계획을 붙박이로 넣었다는 사실은, FDA가 AI 의료기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 칸 옮겨갔음을 보여준다. 허가란 특정 시점의 소프트웨어를 승인하는 일이라는 오래된 전제 대신, 계속 바뀌는 물건을 어떤 울타리 안에서 바뀌게 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일로 규제의 질문이 이동한 것이다. AI 영상 계측을 준비하는 회사에게 이 조항은, 성능만큼이나 "어떻게 개선할지"의 설계도가 이제 허가의 일부가 됐다는 신호다.
출처
- Medical Devices; Radiology Devices; Classification of the Radiological Machine Learning-Based Quantitative Imaging Software With Predetermined Change Control Plan (Federal Register, 2026-06-17)
- 21 CFR 892.2055 신설 조문 (FR Doc. 2026-12166)
- Caption Health Automated Ejection Fraction Software De Novo (DEN220063)
- Automated Ejection Fraction SaMD De Novo (SoftwareCPR)
- Virtual and Digital Health Digest (Arnold & Porter, 2026-06)
- FDA Predetermined Change Control Plan (PCCP) Guide (IntuitionLa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