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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AI 비즈니스신윤섭·2026년 2월 19일

1,714억 투자하고 수가는 2,920원: 한국 의료 AI 산업의 구조적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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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보건복지부 R&D 예산은 1조 652억원이다. 83개 사업, 전년 대비 12.6% 증가. 이 가운데 의료 AI 경쟁력 확보에만 1,714억원이 들어간다. AI 복지·돌봄까지 합치면 2,478억원으로 전년의 2.5배다. 국가대표기술 30개를 선정하고 5년 안에 28개 AI 의료기기 인허가를 끝내겠다는 목표도 내걸었다.

그런데 이 기술들이 실제 병원에서 쓰일 때 받는 건강보험 수가는 1군 기준 2,920원이다. 영상전문의 판독료의 10% 수준. 개발하고, 임상시험하고, 식약처 인허가를 받고, 건보 등재까지 마친 끝에 돌아오는 금액이 커피 한 잔 값이다.

1,714억은 어디에 쓰이나

2026년 한국 정부 의료 AI 투자 구성
2026년 한국 정부 의료 AI 투자 구성

이 예산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의료 데이터 생성과 활용, 의료 AI 스타트업 육성, 의료 현장 AI 구현 지원이다.

데이터 인프라 투자는 AI 학습 데이터 확보에 쓰인다. 모델 성능이 학습 데이터의 양과 질에 직결되니, 병원들의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공유 가능한 형태로 가공하는 사업이다. 스타트업 육성은 초기 기업의 기술 검증과 시장 진입을 돕고, 현장 구현 지원은 허가를 받은 AI 제품이 실제 의료기관에 도입되도록 보조한다.

올해 신설된 20개 의료 AI 검증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AI 의료기기가 실제 임상 환경에서 제 성능을 내는지 확인하는 사업인데, 뒤집어 말하면 아직 현장 검증이 충분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 전체 R&D 예산 중 신규 사업은 14개(638억원), 나머지 69개(1조 14억원)는 계속 사업이다. 의료 AI 예산이 갑자기 끊길 가능성은 낮다. 다만 대부분이 R&D와 인프라 단계에 몰려 있다. 정부 투자의 끝단에서 기업이 마주하는 건 결국 수가라는 벽이다.

수가 2,920원이 만드는 현실

한국 AI 의료기기 수가 체계 비교
한국 AI 의료기기 수가 체계 비교

한국의 AI 의료기기 수가 체계는 4개 군이다. 1군 2,920원, 2군 1,810원, 3군 1,180원, 4군 310원. 건강보험 급여 항목 기준이다.

1군 2,920원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를 보자.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흉부 X-ray를 판독하면 판독료를 받는다. AI 수가는 그 판독료의 약 10%다. AI가 영상을 분석해 이상 소견을 표시하고 의사가 참고해 판독하는 전체 과정에 2,920원이 지급된다.

비급여(건보 적용 없이 환자 전액 부담) AI 분석료 상한은 18,100원이다. 급여 수가보다는 높지만 문제가 따른다. 환자에게 직접 청구해야 하는데, "AI가 도와줬으니 만 팔천 원을 더 내라"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판독하면 될 일에 왜 AI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AI 의료기기 하나를 시장에 내놓기까지 개발비, 임상시험비, 인허가 비용, 서버 운영비, 업데이트 비용이 모두 든다. 건당 2,920원으로는 투자 회수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진다.

국내에서 만들고 해외에서 번다

루닛과 뷰노 2025년 매출 비교
루닛과 뷰노 2025년 매출 비교

이 간극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선명하다. 한국 의료 AI 기업들은 국내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검증한 뒤, 수익은 해외에서 올리는 구조로 향하고 있다.

루닛이 대표 사례다. 2025년 매출 831억원(전년 대비 53% 성장)을 찍었고, 2026년에도 40~50% 성장을 목표로 잡았다. EBITDA 흑자 전환 시점은 2026년 말이다. 이 성장의 대부분이 해외 매출에서 나온다. 국내 수가 2,920원으로는 이런 성장 곡선을 그릴 수 없다.

뷰노도 같은 경로를 밟는다. 2025년 매출 348억원(전년 대비 35% 성장), 흑자전환 목표는 2026~2027년이다. 전략적 방향은 미국과 중동이다. 심정지 예측 AI 딥카스(DeepCARS)가 FDA 승인을 앞두고 있고, 이집트·UAE·쿠웨이트·사우디에서 인허가를 진행 중이다. 패스웨이인베스트먼트에서 100억원 전략적 투자를 유치하고 영구채 100억원을 추가 조달한 것도 해외 확장 자금이다.

딥카디오(인하대병원 심장내과 기반, 2020년 설립)는 AI 심전도 분석 소프트웨어로 진단 정확도 90.7%를 달성했고, 2026년 5~6종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런 중소 규모 기업에게 국내 수가 체계는 더 가혹하다. 루닛이나 뷰노처럼 해외 진출 인프라가 없는 기업은 건당 수백~수천 원으로 사업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가 1,714억원을 투자해 키운 기업들이 수익은 해외에서 올리고, 국내 의료 현장에서는 AI가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역설이 생긴다. 혁신의료기기 지정 건수가 2025년 45개(전년 29개, 55% 증가)에 달하지만, 지정과 실제 병원 도입 사이에는 수가라는 장벽이 놓여 있다.

7,450억원 시장이라는 숫자의 속

한국 의료 AI 시장은 2020년 약 773억원에서 2026년 약 7,450억원으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연평균 약 46% 성장, 세계 3위 수준이라는 평가다.

이 숫자를 해석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정부 R&D 지원금, 투자 유치금, 해외 매출이 모두 섞여 있다. 순수하게 국내 의료 현장에서 수가를 통해 발생하는 매출만 따로 떼면, 시장 규모는 훨씬 줄어든다.

글로벌과 비교하면 괴리가 더 뚜렷하다. 글로벌 AI 의료 시장은 2025년 393억 달러에서 2034년 1,033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인데, 그 성장을 끌어가는 건 수가와 보험 체계가 뒷받침되는 시장이다. 미국은 CPT 코드를 통해 AI 판독에 별도 수가를 인정하고 이를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한국 수가가 현 수준에 머무르는 한, 7,450억원은 실체보다 기대에 가까운 숫자가 될 수 있다.

빠진 한 조각

한국 의료 AI 투자-수가 간극 구조
한국 의료 AI 투자-수가 간극 구조

한국 의료 AI 산업의 현재 구조를 정리하면 이렇다. 정부가 돈을 넣고, 기업이 기술을 만들고, 식약처가 허가를 내준다. 혁신적 의료기기 최단 80일 시장 진입까지 실현했다. 그 끝에서 기업이 받는 건 커피 한 잔 값이다.

합리적인 기업이라면 국내에서 건당 2,920원을 받으며 소모전을 벌이기보다 해외에서 제 값을 받는 쪽을 택한다. 루닛과 뷰노가 실제로 그 길을 걷고 있다. 문제는 모든 기업이 해외에 나갈 수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FDA 인허가, 현지 파트너십, 마케팅 인프라를 갖추려면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다. 딥카디오처럼 기술력은 있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에게는 해외 진출 자체가 또 다른 장벽이다.

수가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소수 대형 기업만 살아남는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2026년은 정부 투자가 사상 최대이고, 인허가가 빨라졌고, 기술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R&D 투자가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그 중간에 있는 수가가 기업의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와야 한다. 1,714억원이 해외 진출 비용으로만 쓰이고 끝나는 건 정부도 기업도 원하는 결과가 아니다.

YS

신윤섭

데이너스 대표 | AI 교육 & AX 컨설팅

81개 이상의 AI/AX 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50여 기업과 기관에서 강의했습니다. 강남세브란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다양한 조직의 AI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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