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 AI 양대 상장사가 나란히 역대 최대 매출을 찍었다. 루닛 831억원(+53%), 뷰노 348억원(+35%). 두 회사 모두 2026년을 흑자전환의 해로 선언했다. IR 자료에는 낙관적인 그래프가 가득하고, 언론은 "역대급 실적"을 앞다퉈 보도한다.
숫자를 좀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루닛은 볼파라 인수 후유증으로 2,500억원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뷰노는 영구채 100억원을 발행해 해외 공략 자금을 마련했다. 국내 AI 수가는 건당 2,920원에 머문다. "역대 최대 매출" 뒤에 숨은 방정식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루닛, 해외 매출 92%가 말해주는 것

루닛의 2025년 매출 831억원 가운데 해외 비중이 92%다. 국내는 8%에 불과하다. 이 비율 하나가 루닛의 전략을 압축한다. 한국 시장에서 수익을 내겠다는 기대를 사실상 접은 것이다.
해외 매출의 두 축은 INSIGHT와 SCOPE다. INSIGHT는 영상진단 AI 제품군이다. MMG(유방촬영), CXR(흉부X선), Risk(유방암 위험예측)가 핵심 라인업이다. 2026년 2월 INSIGHT MMG가 식약처 클래스 III 허가를 받았고, INSIGHT Risk는 FDA 510(k) 심사가 진행 중이다.
더 눈여겨볼 제품은 SCOPE다. AI 기반 바이오마커 분석 플랫폼으로, 글로벌 제약사의 항암제 임상시험에서 동반진단 도구로 쓰인다. 2025년 종양학 사업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159% 뛰면서 100억원을 돌파했다. 개별 분석 건당 수백만~수천만원의 용역비가 붙는 구조라 건당 2,920원짜리 국내 AI 수가와는 차원이 다르다. 루닛이 해외에 집중하는 이유를 SCOPE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재무 상황이 마냥 탄탄하지는 않다. 2024년 5월 볼파라(Volpara Health Technologies) 인수에 1,715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는데, CB 풋옵션 행사 압박이 현실적 리스크로 떠올랐다. 결국 2026년 초 2,500억원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조달 자금 중 1,378억원이 채무상환에, 1,125억원이 운영자금에 들어간다. 서범석 대표는 "마지막 자본 조달"이라고 했다.
볼파라 인수의 전략적 논리는 명확하다. 미국 유방촬영 시장에서 볼파라가 보유한 병원 네트워크에 INSIGHT AI를 결합해 교차판매를 노리는 것이다. 2026년부터 시너지가 본격화되면 미국 매출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게 루닛의 설명이다. 논리는 깔끔하다. 다만 인수 후 통합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건 M&A의 오랜 교훈이기도 하다.
서범석 대표의 목표는 구체적이다. "올해 매출 40~50% 성장, 비용 20% 이상 절감, 연말 EBITDA 기준 흑자전환." 원래 2027년이던 목표를 1년 앞당겼다. 매출로 환산하면 1,200억~1,250억원 수준이다.
뷰노, 딥카스 한 장에 건 승부

뷰노의 매출 구조는 루닛과 확연히 다르다. 2025년 매출 348억원 중 딥카스(DeepCARS)가 257억원으로 전체의 74%를 차지한다. 사실상 딥카스 원톱 체제다.
딥카스는 AI 기반 심정지 예측 조기경보시스템(EWS)이다. 병원 내 심정지를 46% 줄였다는 임상 데이터가 있고, FDA 혁신의료기기 지정 상태에서 510(k)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뷰노 측은 추가 보완 서류 없이 승인이 확정적이라고 본다.
매출의 74%가 단일 제품에 몰려 있다는 건 양면이 있다. 잘 나가는 동안은 효율적이지만 리스크가 한 곳에 집중된다. 딥카스 FDA 승인이 지연되거나 미국 시장에서 기대만큼 안 팔리면 뷰노의 성장 방정식 전체가 흔들린다.
해외 전략은 미국과 중동 투트랙이다. 미국은 딥카스 FDA 승인 이후 본격 진출을 계획하고 있으며, 경쟁사로는 페라헬스(Pera Health)가 거론된다. 중동에서는 이집트, UAE,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4개국에서 인허가를 진행 중이다. 이집트 대형 그룹 헬스케어 자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2026년 상반기 내 인허가 획득을 목표로 잡았다.
2026년 2월에는 서울 콘래드호텔에서 Global Patient Safety Summit을 열었다. 국내 의료 AI 기업이 주관한 첫 글로벌 규모 환자안전 심포지엄이다. 국제신속대응시스템학회(iSRRS)가 후원했다. 학술적 권위 구축과 해외 영업 파이프라인 확대를 동시에 노린 행보다.
재무 측면에서는 패스웨이인베스트먼트로부터 100억원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고, 영구채 100억원도 조달했다. 루닛의 2,500억원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지만, 뷰노의 연매출(348억원) 대비로 보면 가벼운 금액은 아니다.
뷰노의 비용 관리 능력이 숫자에서 드러난다. 2025년 영업비용 398억원은 전년 383억원 대비 4% 증가에 그쳤고, 영업손실은 49억원으로 전년 124억원에서 60% 줄었다. 매출은 35% 늘리면서 비용을 거의 동결한 셈이다. 이 추세가 유지되면 2026~2027년 흑자전환이 산술적으로 가능하다.
건당 2,920원, 국내 시장만으로는 안 되는 구조

한국의 의료 AI 수가는 영상전문의 판독료의 10% 수준으로 책정됐다. 1군(병리검사) 2,920원, 2군(MRI/CT/PET) 1,810원, 3군(내시경/초음파) 1,180원, 4군(기타) 310원. 비급여 상한은 1군 기준 최대 87,600원(수가의 30배)이지만 대다수 병원에서 비급여 청구는 제한적이다.
이 구조에서 국내 시장만으로 의미 있는 수익을 내기란 구조적으로 어렵다. 루닛의 해외 매출 비중 92%는 이 현실에 대한 시장의 답이다. 뷰노 역시 딥카스 해외 확장을 흑자전환의 핵심 변수로 내세운다.
업계에서는 2026년 정식 건강보험 등재 과정에서 수가 인상이 이뤄지리라는 기대가 있다. 다만 구체적인 인상 논의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AI가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들어온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는 평가와 이 수가로는 사업 모델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 의료 AI 기업의 수익 방정식에서 국내 시장은 레퍼런스 확보와 임상 데이터 축적의 무대이고, 실질적 매출은 해외에서 만들어야 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좋게 말하면 "글로벌 기업"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내수로는 안 되는 기업"이다.
정부 예산 1,714억원, 기업 흑자에 직접 도움이 되나

2026년 보건복지부 R&D 예산은 1조 652억원으로 전년 대비 12.6% 늘었다. 의료 AI 경쟁력 확보에 1,714억원이 배정됐고, AI 복지와 돌봄 영역까지 합치면 2,478억원으로 전년 대비 2.5배다.
의료 데이터 생성과 활용, 의료 AI 스타트업 육성, 의료 현장 AI 구현 지원 등에 분산 투입된다. 2026년 신규 20개 의료 AI 검증 프로젝트가 추가 지원되고, 국가대표기술 30개를 선정해 5년 내 28개 AI 의료기기 인허가를 목표로 한다. 혁신의료기기 지정은 2025년 한 해 45개로 전년 29개에서 55% 늘었다.
식약처도 움직이고 있다. 생성형 AI 의료기기 허가 심사 가이드라인을 세계 최초로 발간했고, AI/ML SaMD 품질관리 가이드라인 초안이 공람 중이다(3월 10일 마감). 허가 자료 요약, 전문 번역, 검토서 초안 작성에 AI를 단계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고, 실사용데이터(RWE)를 임상자료로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도 제시했다.
이 정책 지원이 기업 흑자전환에 직접 기여하느냐. 별개의 질문이다. R&D 보조금은 연구개발 비용을 줄여주지만 매출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혁신의료기기 지정이 45개로 늘었다는 건 파이프라인이 풍부해졌다는 의미이지 상업적 성공과는 다른 이야기다.
정부 투자의 실질적 가치는 인허가 속도에 있다. 식약처가 AI 심사 시스템을 도입하고, RWE 인정 범위를 넓히고, PCCP 도입을 논의하는 것은 규제 병목을 줄여 글로벌 시장 진출 속도를 높인다. 루닛과 뷰노 모두 해외 매출이 열쇠인 만큼, 국내 규제 환경 개선은 간접적이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루닛 vs 뷰노, 흑자전환 경로 비교

한국 의료 AI 시장 규모는 2026년 약 7,450억원으로 전망된다. 2020년 773억원에서 연평균 46% 성장한 수치다. 다만 이 시장을 루닛과 뷰노가 국내에서 나눠 갖는 구도가 아니다. 양사의 승부처는 글로벌에 있다.
두 기업의 흑자전환 경로를 비교하면 구조적 차이가 뚜렷하다.
매출 규모와 다각화 측면에서 루닛은 831억원에 INSIGHT와 SCOPE라는 두 엔진을 갖고 있다. 뷰노는 348억원에 딥카스 의존도 74%다. 한쪽 엔진이 꺼져도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에서 루닛이 앞선다.
해외 진출 단계에서도 차이가 난다. 루닛은 볼파라 인수로 미국에 이미 진입했고 해외 매출 비중이 92%다. 뷰노는 딥카스 FDA 승인을 앞두고 있으며 중동 시장은 인허가 진행 중이다. 루닛이 1~2년 선행한다.
자본 구조는 반대다. 루닛은 2,500억원 유상증자로 CB 풋옵션 리스크를 제거했지만 기존 주주 희석이 발생했다. 뷰노는 영구채 100억원과 전략적 투자 100억원으로 상대적으로 소규모 자금을 조달했다. 자본 부담은 뷰노가 가볍다.
비용 효율에서도 뷰노가 돋보인다. 영업비용 증가율 4%(매출 증가율 35% 대비)는 인상적이다. 루닛은 볼파라 통합 비용이 2026년까지 지속될 수 있고, 비용 20% 절감 목표를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두 기업의 흑자전환이 한국 의료 AI 산업 전체에 갖는 의미는 단순하다. 상장 의료 AI 기업이 흑자를 내야 후속 기업의 IPO와 투자 유치가 열린다. VC가 요구하는 "기본기 증명"이 바로 이것이다. 딥카디오(AI 심전도, 2026년 5~6종 신제품 예정), 네오펙트(재활 로봇, 중동과 북미 확대) 같은 차세대 기업의 성장 경로가 루닛과 뷰노의 실적에 달려 있다.
2026년 연말에 루닛이 EBITDA 흑자를 달성하고 뷰노가 딥카스 FDA 승인을 받아 미국 시장에 진입하면, 한국 의료 AI는 "성장 스토리"에서 "수익 모델"로 전환하는 분기점을 맞는다. 반대로 볼파라 시너지가 기대에 못 미치거나 딥카스 FDA 승인이 지연되면 시장의 인내심은 빠르게 소진된다. 역대 최대 매출이라는 뉴스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