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AI라고 하면 대부분 CT나 MRI 영상을 읽어 병변을 찾는 장면을 떠올린다. 실제로 FDA 승인 AI/ML SaMD(Software as a Medical Device) 대다수가 영상진단에 몰려 있고, 2026년 2월에도 Aidoc aiOS Detect, PathAI Prostate, Viz.ai LVO 등이 줄줄이 510(k)를 통과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의료적 판단을 내리는 영역이 영상판독뿐일 리 없다. 3D 바이오프린팅(살아 있는 세포를 잉크처럼 써서 조직이나 장기 구조물을 층층이 쌓는 기술)에 AI가 붙으면, SaMD의 정의 자체가 넓어진다. 코스닥 상장사 로킷 헬스케어(A376900)가 2월에 AI 역노화 물질 Cell-Neuron을 출시하고, 중국 WEGO 그룹과 AI 기반 장기재생 플랫폼 상용화 협약을 맺은 건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셀트리온 출신이 만든 바이오프린터
로킷 헬스케어는 셀트리온에서 갈라져 나왔다. 바이오시밀러가 아닌 바이오프린팅으로 방향을 틀었고, 핵심 제품이 d.FIT이라는 3D 바이오프린팅 플랫폼이다.
d.FIT이 눈에 띄는 건 규제 이력 때문이다. 식약처 3등급 허가를 받았고, 2025년 FDA 510(k)까지 획득했다. 3등급은 식약처 분류 중 가장 높은 위험도 등급이다. 체내 이식형 의료기기나 생명유지장치에 적용하는 수준으로, 바이오프린팅 장비가 여기에 해당한다는 건 실험실 연구 도구가 아니라 임상 현장에서 환자에게 직접 쓰는 의료기기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FDA 510(k)는 기존 시판 유사 기기와 실질적 동등성을 입증하는 허가 경로다. 바이오프린팅 분야에서 이 경로를 통과한 기업은 글로벌에서도 드물다. 미국 시장 진입 관문을 넘은 것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더 넓게 보면 바이오프린팅 기반 소프트웨어가 SaMD 규제 체계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선례가 된다.

Cell-Neuron: NMN으로 당뇨와 인지장애를 동시에 겨냥하다
Cell-Neuron은 3D 프린터가 아니다. AI 기반 역노화 물질, 건강기능식품/바이오소재 영역의 파이프라인이다.
핵심 기전은 NMN(니코틴아마이드 모노뉴클레오타이드)에 있다. NMN은 체내에서 NAD+로 전환되는 전구체다. NAD+는 세포 에너지 대사, DNA 수복, 미토콘드리아 기능에 필수적인 조효소인데, 나이가 들수록 체내 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외부에서 NMN을 보충해 NAD+ 수준을 끌어올리면 세포 노화를 되돌릴 수 있다는 게 역노화 연구의 핵심 가설이다.
Cell-Neuron이 기존 NMN 보충제와 갈리는 지점은 타겟이 둘이라는 데 있다. 첫째는 당뇨다. 혈당 대사 조절 경로를 통해 인슐린 감수성을 개선한다. 둘째는 경도인지장애(MCI)다. NGF-TRKA 신호전달을 활성화하고 신경염증과 산화 스트레스를 줄여 신경세포를 보호한다. NGF(신경성장인자)는 뇌 신경세포의 생존과 성장에 관여하는 단백질이고, TRKA는 NGF가 결합하는 수용체다. 이 신호가 약해지면 신경세포가 위축되고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
두 질환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에는 의학적 근거가 있다. 제2형 당뇨 환자의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은 1.5~2배 높다는 역학 데이터가 쌓여 있다. 인슐린 저항성이 뇌 에너지 대사를 교란해 신경퇴행을 가속한다는 가설, 이른바 '제3형 당뇨'도 학계에서 논의가 활발하다. Cell-Neuron은 대사 장애와 신경 손상이라는 두 질환의 공통 축을 동시에 공략하려는 것이다.
미국 네바다대 의대(UNR)와 글로벌 전임상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2026년까지 전임상 데이터 확보가 목표이고, 현재 동물실험 단계에서 혈당 대사 조절 효과와 NGF-TRKA 신호 활성화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체 임상 결과는 아직 없으므로 효과 판단은 유보해야 하지만, 전임상 파트너가 미국 의대라는 점은 FDA 규제 경로 진입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
텔로미어 미세환경 복원 기반 항노화 포뮬러도 함께 출시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에 붙은 보호 구조물로,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지면서 노화의 생물학적 시계 역할을 한다. 이 길이를 유지하거나 복원해 세포 수준에서 역노화를 시도하는 접근이다. 두 제품 모두 로킷 헬스케어의 48개국 유통망으로 순차 공급될 예정이다.

WEGO와 손잡다: 규제 자산 위에 쌓는 글로벌 상용화
Cell-Neuron이 소재 차원이라면, 플랫폼 전략은 d.FIT에 집중돼 있다. 2026년 1월 8일 중국 WEGO 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이 그 축이다.
WEGO는 중국 의료기기 시장 상위권에 있는 대형 그룹이다. 협약 핵심은 d.FIT의 3D 바이오프린팅에 AI를 결합해 환자 개인의 피부 상태에 맞춘 재생 치료를 자동 설계·실행하는 시스템을 중국에서 상용화하는 것이다.
AI가 이 구조에서 맡는 역할이 핵심이다. 3D 바이오프린팅은 소재 배합, 프린팅 경로, 온도·압력 제어 등 변수가 많은 기술이다. 환자마다 피부 두께, 손상 범위, 세포 상태가 다르니 매번 수동으로 조건을 맞추면 효율이 떨어지고 재현성도 낮아진다. AI가 환자 데이터를 입력받아 최적 프린팅 조건을 자동 생성하면, 이 과정 자체가 개인화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SaMD의 새로운 형태가 된다.
로킷 헬스케어는 하반기 즉시 상용화와 매출 실현을 내다보고 있다. WEGO의 중국 유통 인프라와 로킷 헬스케어의 48개국 기존 네트워크를 결합해, 규제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피부 재생 적응증에서 빠른 시장 침투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다만 냉정하게 봐야 할 부분이 있다. d.FIT은 한국과 미국에서 규제 승인을 받았지만, 중국에는 NMPA(국가약품감독관리국)라는 별도 규제 체계가 있다. WEGO 파트너십이 중국 내 규제 승인까지 포함하는 것인지,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비의료 영역(미용/웰니스)부터 공략하는 전략인지는 공개 정보만으로 알 수 없다.

바이오프린팅 AI가 규제에 던지는 질문
로킷 헬스케어 사례가 업계에 시사하는 건 SaMD의 경계 확장이다.
FDA와 식약처의 AI/ML SaMD 규제 프레임워크는 대부분 영상진단 AI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 의료 영상을 입력받아 진단 보조 소견을 출력하는 구조가 전형이다. 식약처가 2월에 공개한 PCCP 가이드라인과 실시간학습 알고리즘 가이드라인도 이 구도에 기반한다.
바이오프린팅 AI는 구조가 다르다. 입력은 환자의 신체 데이터이고, 출력은 물리적 산출물, 즉 프린팅된 조직이나 장기 구조물이다. 소프트웨어가 의료적 판단을 내린다는 점에서 SaMD 정의에 부합하지만, 그 판단이 물질적 결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기존 프레임워크가 포착하지 못하는 위험이 생긴다.
AI가 프린팅 조건을 잘못 설정하면 이식된 조직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영상진단 AI의 오류가 "놓친 진단"이라면, 바이오프린팅 AI의 오류는 "잘못 만들어진 조직"이다. 위험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FDA의 PCCP가 이런 유형까지 포괄하려면 별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수 있고, 그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로킷 헬스케어는 d.FIT으로 식약처 3등급과 FDA 510(k)를 확보하며 이 미지의 규제 영역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인 기업 가운데 하나가 됐다. Cell-Neuron과 WEGO 파트너십은 바이오프린팅 플랫폼 위에 AI 역노화 소재와 글로벌 유통을 쌓는 3층 전략이다. 전임상 데이터가 쌓이고 WEGO와의 상용화가 매출로 전환되는지가 관건이지만, "SaMD는 영상진단 AI"라는 암묵적 전제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