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 AI 업계에서 연간 흑자를 찍은 기업이 처음 나왔다. 루닛도 뷰노도 아닌 씨어스테크놀로지. 매출 482억원, 영업이익 163억원. 그 중심에는 병상 옆 웨어러블 센서가 있다.

흑자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한국 의료 AI 상장사 가운데 연간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한 기업은 씨어스테크놀로지가 처음이다. 2025년 실적으로 보면 매출 482억원, 영업이익 163억원. 전년 매출이 80억원이었으니 성장률 495%. 같은 해 영업손실 87억원을 냈던 회사가 한 해 만에 163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의료 AI 하면 보통 루닛과 뷰노를 떠올린다. 루닛은 2025년 매출 831억원으로 업계 최대 외형을 갖췄고, 뷰노도 348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매출을 경신했다. 그런데 이 두 회사 모두 아직 흑자가 아니다. 루닛은 831억원 영업손실을 냈고, 뷰노는 4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2026년을 흑자 전환의 해로 선언한 상태이지만, 선언과 실현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다.
씨어스가 먼저 흑자에 도달한 이유는 기술력 때문이 아니다. 돈 버는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루닛과 뷰노가 의료 영상을 AI로 읽어내는 소프트웨어 회사라면, 씨어스는 환자 몸에 센서를 붙이고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 플랫폼 회사다. 같은 "의료 AI"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사업의 뼈대가 전혀 다르다.

씽크라는 제품: 일반병동의 사각지대를 파고들다
씽크(THINK)는 씨어스의 입원환자 모니터링 플랫폼이다. 환자 몸에 붙이는 웨어러블 센서가 심전도, 산소포화도, 맥박, 체온, 호흡을 끊임없이 수집한다. AI가 이 데이터를 분석하다가 이상 징후를 포착하면 의료진에게 곧바로 알린다.
이게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려면 일반병동의 현실을 알아야 한다. 중환자실에는 침상마다 모니터가 달려 있지만, 일반병동은 사정이 다르다. 간호사가 4~6시간 간격으로 환자를 돌며 활력징후를 직접 측정한다. 측정과 측정 사이 환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야간에는 간격이 더 벌어진다. 씽크는 바로 이 빈틈을 노렸다.
씽크의 진입장벽은 세 층위로 쌓여 있다. 자체 설계·생산하는 웨어러블 센서, 활력징후를 해석하는 AI 알고리즘, 병원 전자의무기록(EMR)과의 연동이 그것이다. 센서만 잘 만들어서 될 일이 아니고, AI만 뛰어나다고 팔리는 것도 아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 병원 IT 시스템을 한꺼번에 묶어야 하니, 뒤늦게 뛰어드는 경쟁자 입장에서는 넘어야 할 벽이 높다.
임상 데이터가 이 제품의 설득력을 뒷받침한다. 웨어러블 체온 패치와 AI를 결합해 암 환자의 발열을 추적한 연구에서 기존 방식보다 평균 1.13시간 먼저 발열을 감지했다. 조기발견 성공률 77.1%, 민감도 81.5%, 특이도 96.3%.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발열은 감염의 첫 경고등이다. 한 시간 앞서 알아챈다는 건 치료 타이밍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2025년 한 해 동안 씽크가 깔린 병상은 약 1만 2천 개. 4분기에만 6천 병상을 추가 설치하면서 연말에 급가속이 붙었다. 평택성모병원은 중환자실 포함 전체 359병상에 씽크를 들여놨고, 경기권에서 가장 넓은 범위에 적용된 사례로 남았다. 2026년 목표는 3만 병상이다.

건당 2,920원 vs 병상당 구독: 수익구조의 근본적 차이
루닛과 뷰노의 국내 매출은 건강보험 수가에 묶여 있다. AI가 흉부 엑스레이 한 장을 판독하면 건당 2,920원이 책정된다. 커피 한 잔보다 싸다. 이 수가에서 의미 있는 이익을 내려면 판독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야 하는데, 국내 병원 수는 한정돼 있다. 루닛이 해외 매출 비중 92%까지 끌어올린 것도, 뷰노가 미국 FDA 허가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이 수가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서다.
씽크는 아예 다른 궤도를 탄다. 병원에 하드웨어와 시스템을 설치할 때 초기 매출이 잡히고, 이후에는 병상당 월 구독료가 쌓인다. 병상이 늘수록 설치 매출과 구독 매출이 함께 불어나는 구조다. SaaS 기업이 자랑하는 "리커링(반복) 매출" 모델을 의료기기 형태로 구현한 셈이다.
3분기까지 씽크 누적 매출이 240억원이었는데, 4분기에만 6천 병상이 추가됐다. 이미 설치된 병상에서 구독 매출이 계속 발생하니 분기마다 바닥이 높아진다. 증권가가 2026년 씨어스의 매출을 1,375억원, 영업이익을 621억원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년의 세 배에 가까운 숫자다.
정리하면, 영상진단 AI는 '검사당 과금', 웨어러블 모니터링 AI는 '병상당 구독'이다. 한쪽은 건강보험 수가라는 천장에 부딪히고, 다른 쪽은 병원이 스스로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서 구매를 결정한다. 간호 인력 부족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한국 병원 현실에서 "간호사 인건비 대비 씽크 구독료"라는 비교가 병원 경영진의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퓨어헬스와 중동: 경쟁이 덜한 곳에서 크게 벌이다
씨어스의 해외 전략은 중동에서 시작된다. 파트너는 아랍에미리트(UAE) 국영 헬스케어 그룹 퓨어헬스(PureHealth). 연 매출 약 8.9조원, 중동 최대 의료 그룹이다.
퓨어헬스가 씽크를 고른 이유는 중동 의료 시장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지역은 대형 병원 신축 붐이 한창이고 자금력은 넉넉한데, 의료 인력이 만성적으로 모자란다. 간호사를 한 명 더 고용하는 것보다 웨어러블 센서를 깔아서 환자를 감시하는 편이 현실적인 대안이 되는 시장이다. 씽크가 풀려는 문제와 중동이 겪고 있는 문제가 겹쳐진 셈이다.
이영신 씨어스 대표는 "2029년에는 해외 매출 비중이 국내와 같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퓨어헬스와의 파일럿이 성과를 내면 중동 전역으로 확장되는 경로가 열린다.
루닛이 미국·유럽 방사선과를, 뷰노가 미국 중환자 시장을 겨냥하는 것과 비교하면, 씨어스는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한 무대에서 큰 판을 벌이는 쪽을 택했다. 영상진단 AI는 글로벌 경쟁이 이미 과열됐지만, 웨어러블 입원환자 모니터링 시장은 아직 글로벌 승자가 정해지지 않았다.

빅3 각자의 길, 2026년 전망
2026년은 한국 의료 AI 세 기업 모두 흑자를 향해 달리는 해다. 목표 지점까지의 거리가 다를 뿐이다.
씨어스테크놀로지는 이미 도착했다. 증권가는 올해 매출 1,375억원에 영업이익 621억원을 전망한다. 변수는 씽크의 병상 확보 속도와 중동 매출이 언제 본궤도에 오르느냐다. 3만 병상을 채우면 구독 매출 기저가 한 단계 높아져서 이익률이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
루닛은 외형이 가장 크지만 갈 길이 멀다. 831억원 매출에 831억원 영업손실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볼파라 인수 후 연구개발비 부담이 크다. 올해 목표는 EBITDA(상각전영업이익) 기준 흑자전환. 원래 2027년이었던 목표를 1년 앞당겼다. 비용을 20% 줄이고 매출을 40~50% 키워 연말에 월간 EBITDA 손익분기를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AI 바이오마커 플랫폼 Lunit SCOPE의 매출이 159% 뛰며 새 성장축으로 자리 잡고 있고, 최근에는 국내 원격 영상판독 센터에도 솔루션 공급을 시작했다.
뷰노는 흑자 문턱까지 올라와 있다. 증권가 전망은 매출 466억원, 영업이익 51억원. 심정지 예측 AI 딥카스(DeepCARS)가 매출의 74%를 책임지는 킬러 제품이다. FDA 보완 서류 제출은 끝냈고 최종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허가가 떨어지면 미국 시장 공략이 본격화된다. 메이요 클리닉과의 파트너십이 이미 깔려 있어 채널 확보는 된 상태다.
세 회사의 전략은 뚜렷이 갈린다. 씨어스는 웨어러블+구독으로 국내 수익을 먼저 확보한 뒤 중동으로 넓힌다. 루닛은 해외 영상진단 시장에서 덩치를 키우면서 바이오마커라는 두 번째 축을 세운다. 뷰노는 딥카스 하나에 올인하되, FDA 허가라는 결정적 한 방을 기다린다.
영상진단 너머로, 의료 AI 지형이 넓어지고 있다
2~3년 전까지 한국 의료 AI는 사실상 "영상진단 AI"였다. 루닛의 흉부 엑스레이, 뷰노의 망막 사진, 코어라인소프트의 폐 CT. 의료 영상에 딥러닝을 씌우는 기업이 곧 이 산업이었다.
씨어스의 부상은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뚜렷한 신호다. 웨어러블 실시간 모니터링, 셀바스AI와 메디아나의 유·무선 통합 환자감시, 제이엘케이의 뇌졸중 AI 구독 모델까지. "의료 AI"라는 말이 담는 범위가 눈에 띄게 넓어졌다.
셀바스AI는 2025년 연결 매출 1,148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자회사 메디아나가 내놓은 유·무선 통합 모니터링 솔루션은 출시 10영업일 만에 종합병원 계약을 따냈다. 북미 환자감시장치 매출은 60% 넘게, 유럽 AED(자동심장제세동기) 매출은 65% 넘게 늘었다. 제이엘케이도 뇌졸중 AI JLK-DWI로 심평원 등록 76개 병원을 확보하며 구독형 매출 기반을 다지고 있다.
올해 1월 시행된 디지털의료제품법이 이 흐름에 속도를 더한다. 113개 디지털 기기에 허가 후 별도 평가 없이 바로 임상에 쓸 수 있는 경로를 열었고, AI 의료기기 관리체계 가이드라인 2종도 제정됐다. 규제가 산업 뒤를 쫓아가던 단계에서 나란히 걷기 시작한 모양새다.
한국 의료 AI는 "기술이 되느냐"를 증명하는 단계를 지나 "돈이 되느냐"를 증명하는 단계로 넘어왔다. 씨어스가 첫 번째 답을 내놨고, 뷰노와 루닛이 각자의 방식으로 뒤를 잇겠다고 손을 들었다. 누가 흑자를 유지하고, 누가 흑자에 도달하느냐. 그 결과가 이 산업의 신뢰도를 결정할 해가 2026년이다.
출처
- 전자신문 (2026.02.19) "의료 AI 빅3, 올해 '흑자 원년' 총력전"
- 한국경제 (2026.02.04) "의료AI 기업 첫 흑자 씨어스테크놀로지...중동 진출 본격화"
- 서울경제 "이젠 돈 버는 의료 AI… 뷰노 '흑자 전환', 씨어스 '최대 실적'"
- 시대 (2026.02.05) "AI 붙으면 다 뜬다 매출 뛴 루닛·씨어스·뷰노"
- 한국경제 (2026.02.02) "루닛 성장보다 내실…올해 EBITDA 기준 흑자 전환"
- 헬로티 (2026.02.20) "셀바스AI, 의료 AI·모빌리티 확장 기반으로 역대 최대 매출"
- 이투데이 "씨어스테크놀로지, 3분기 매출 157억, 영업익 68억 역대 최대"
- 시대 (2026.02.04) "'의료AI 첫 연간흑자' 씨어스… 환자플랫폼 '씽크' 인기몰이 이어질까"
- 한국경제 (2025.12.03) "씨어스테크놀로지, 씽크에 자사 웨어러블 체온계 연동으로 암환자 발열 조기감지 유효성 입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