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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AI 비즈니스신윤섭·2026년 8월 10일

정부는 왜 허가받은 의료 AI에 다시 돈을 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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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4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AI 응용제품 신속 상용화 지원사업, 이른바 AX-Sprint의 디지털 의료기기 분야 컨소시엄 6곳을 선정했다. 핵심은 이미 식약처 허가를 받은 AI 의료기기에 정부가 2년치 실증 비용을 붙여, 실사용 데이터를 쌓고 그 근거로 신의료기술평가와 건강보험 진입까지 밀어주겠다는 데 있다. 지난주 미국이 허가와 급여의 순서를 뒤집었다면, 이번주 한국은 순서는 그대로 둔 채 그 사이의 골짜기를 정부 예산으로 건너게 하는 쪽을 택했다.


지난주, 정부가 컨소시엄 여섯 곳을 골랐다

의료 AI 회사가 한국에서 겪는 곤란은 오래된 이야기다. 식약처 허가는 받는데, 정작 그 제품이 병원에서 돈이 되지 않는다. 허가증은 시장에 들어갈 자격일 뿐, 병원이 값을 청구할 근거는 따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근거가 갖춰지기까지 몇 년을 버티다 자금이 마르는 회사가 줄을 이었다.

지난주 정부가 이 지점에 손을 댔다. 2026년 8월 4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AI 응용제품 신속 상용화 지원사업의 디지털 의료기기 분야 컨소시엄 6곳을 확정했다. 사업 이름이 AX-Sprint다. AX는 AI Transformation, 인공지능으로의 전환을 줄인 말이고, Sprint는 단거리 전력질주를 뜻한다. 이름 그대로 옮기면 "AI 전환 전력질주" 정도가 된다. 원래 이 사업은 11개 부처가 함께 246개 AI 제품을 밀어주는 큰 이니셔티브의 일부이고, 이번에 발표된 것은 그중 보건의료 기기에 해당하는 몫이다.

지원 방식은 단순하다. 이미 식약처 허가를 받아 시장 문턱에 선 AI 의료기기를 골라, 2026년부터 2027년까지 2년간 병원 현장에서 굴려 보게 하고 그 비용을 정부가 댄다. 보도에 따르면 컨소시엄 한 곳당 2년간 최대 19억 원 안팎이 배정된다. 돈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실사용 데이터를 쌓고 신의료기술평가와 보험 등재를 준비하는 과정, 학회 전시 같은 판촉까지 묶어서 지원한다. 허가 다음의 공백을 정부가 통째로 메워 주겠다는 설계다.


허가와 매출 사이, 한국의 골짜기

이 사업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려면, 한국에서 AI 의료기기가 팔리기까지 넘어야 하는 관문을 순서대로 봐야 한다.

첫 관문은 식약처 허가다. 그 기기가 안전하고 표방한 성능을 내는지를 본다. 여기까지는 미국의 510(k)나 유럽의 CE 인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허가를 받았다고 병원이 곧바로 돈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의료기술은 신의료기술평가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신의료기술평가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맡는 절차로, 그 기술이 실제 환자에게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기존 논문과 임상 근거로 따진다. 이 문을 넘어야 비로소 건강보험 급여를 논의하는 세 번째 관문, 즉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수가 책정으로 넘어간다. 수가가 매겨져야 병원이 그 기술을 쓰고 값을 청구할 수 있다.

세 관문을 다 통과하는 데 짧아야 2~3년, 길면 그 이상이 걸린다. 게다가 상당수 영상 판독 보조 AI는 별도 수가를 받지 못한 채 기존 판독료 안에 묻히거나 비급여로 남는다. 병원이 자기 돈을 들여 도입하기에는 경제성이 떨어지니 국내 도입이 미뤄지고, 회사는 매출을 찾아 미국과 일본으로 눈을 돌린다. 지난주 이 지면에서 다룬 것처럼, 웨어러블 심전도로 국내에 근거를 쌓은 씨어스가 정작 미국 메디케어를 준비하고 제이엘케이가 일본 유통에 힘을 쏟는 흐름이 그 증거다.

업계에서는 이 구간을 죽음의 계곡이라 부른다. 허가라는 봉우리는 넘었는데 매출이라는 반대편 봉우리에 닿기 전, 현금이 바닥나는 골짜기다. AX-Sprint는 바로 이 골짜기를 겨냥한다.


정부가 사주려는 것은 데이터다

AX-Sprint가 컨소시엄에 대주는 돈의 정체를 한 단어로 줄이면 실사용 데이터, 곧 RWD다. real-world data의 약자로, 통제된 임상시험이 아니라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환자에게 쓰이며 쌓이는 데이터를 말한다. 신의료기술평가가 요구하는 유효성 근거는 결국 이런 데이터에서 나온다. 근거가 없어 관문을 못 넘는 것이니, 정부가 그 근거를 만들 밑천을 대주는 셈이다.

왜 하필 정부가 나서야 하는지도 여기서 설명된다. 이런 데이터는 회사가 혼자 모으기가 유독 어렵다. 여러 병원의 협조를 얻어야 하고, 수백에서 수천 명 환자를 몇 달에서 몇 년간 추적해야 하며, 그동안 임상 인력과 데이터 관리 비용이 계속 들어간다. 문제는 이 지출이 매출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데이터를 다 모으고도 신의료기술평가에서 막히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손실로 남는다. 성공이 불확실한 곳에 큰돈을 먼저 넣어야 하니,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회사일수록 이 지출을 미루게 된다. 시장에 맡겨 두면 근거 축적이 지연되는 전형적인 구조다. 정부가 이 초기 비용을 대신 지는 것은, 개별 기업의 위험 부담을 낮춰 근거가 쌓이는 속도를 앞당기려는 개입이다.

AX-Sprint 디지털 의료기기 6개 컨소시엄과 실증 계획
AX-Sprint 디지털 의료기기 6개 컨소시엄과 실증 계획

선정된 회사들의 계획을 보면 이 논리가 또렷하다. 루닛은 흉부 엑스레이와 유방암 진단 AI를 10개 병원에 적용해 25만 건 규모의 실사용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토대로 건강보험 진입을 노린다. 제이엘케이는 뇌졸중 영상 분석 AI 세 종류를 전국 22개 병원, 41명의 뇌혈관 전문의와 함께 2,500명 넘는 환자에게 검증한다. CT 관류영상을 읽는 JLK-CTP, MRI 관류영상의 JLK-PWI, 확산강조영상의 JLK-DWI를 한꺼번에 돌린다. 시너지AI는 생체신호로 부정맥 위험을 예측하는 AI를 15개 병원에서 평가하고, 메디웨일은 안저, 곧 눈 안쪽 망막을 찍은 사진으로 심혈관 질환 위험을 가늠하는 닥터눈 CVD의 근거를 쌓아 보험 수가 등재를 준비한다. 프리베노틱스는 위내시경 영상에서 암으로 번지기 전 병변을 잡아내는 AI로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에서 불필요한 조직 검사를 얼마나 줄이는지를 확인한다.

정부가 붙여 주는 무기는 예산만이 아니다. 이 사업은 이른바 선진입 제도와 함께 묶여 있다. 원래대로라면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한 뒤에야 현장에서 쓸 수 있지만, 몇 가지 예외 통로가 있다. 평가를 일정 기간 유예해 주는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제도, 잠재력이 큰 기술을 별도 트랙에서 먼저 쓰게 하고 나중에 근거로 정식 평가하는 혁신의료기술 지정, 저위험 기술을 우선 현장에 들여 사용 실적을 보는 즉시진입 제도가 그것이다. 셋 다 공통점이 있다. 평가를 통과할 근거를 모으는 그 시간 동안에도 제품을 병원에서 쓸 수 있게 열어 준다는 점이다.

이 대목이 사업의 실질적 노림수다. 원래는 근거를 다 쌓아 평가를 통과한 뒤에야 시장에 나갈 수 있으니, 데이터를 모으는 기간과 매출이 없는 기간이 그대로 겹쳐 골짜기가 깊어졌다. AX-Sprint는 선진입 통로로 이 둘을 떼어 놓는다. 제품이 현장에서 돌아가며 데이터도 쌓고 사용 실적도 만드는 동안, 정부 예산이 그 기간의 비용을 받쳐 준다. 골짜기를 건너는 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건너는 동안 굶지 않게 하는 이중 장치인 셈이다.


미국은 순서를 뒤집었고, 한국은 다리를 놓았다

여기서 지난주 미국의 움직임과 나란히 놓아 보면 두 나라가 같은 문제를 얼마나 다르게 푸는지가 드러난다.

미국 TEMPO와 한국 AX-Sprint, 허가와 매출 사이를 건너는 두 방식
미국 TEMPO와 한국 AX-Sprint, 허가와 매출 사이를 건너는 두 방식

미국은 순서 자체를 건드렸다. FDA의 디지털 헬스 파일럿 TEMPO는 정식 허가를 뒤로 미뤄 주는 대신, 메디케어 급여를 먼저 붙여 회사가 매출을 내며 데이터를 쌓게 했다. 허가와 급여라는 두 관문을 각각 다른 기관이 반대 방향으로 열어, 회사가 검증과 매출을 동시에 진행하도록 판을 깐 것이다. 순서를 뒤집어 골짜기 자체를 없애는 방식이다.

한국의 AX-Sprint는 순서를 그대로 둔다. 식약처 허가, 신의료기술평가, 수가 책정이라는 세 관문의 위치는 바뀌지 않았다. 대신 그 관문들 사이의 골짜기를 건너는 비용을 정부가 대준다. 골짜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골짜기에 임시 다리를 놓아 몇몇 기업을 건너편으로 먼저 보내는 셈이다. 미국이 제도의 배관을 새로 깐 것이라면, 한국은 기존 배관은 그대로 두고 통행료를 정부가 대신 내주는 쪽에 가깝다.

이 차이를 냉정하게 보면 AX-Sprint의 한계도 함께 보인다. 6개 컨소시엄에 2년, 컨소시엄당 19억 원 안팎이라는 규모는, 산업 전체의 수가 공백을 메우기에는 작다. 이번에 선택받지 못한 대다수 회사에게 골짜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사업이 신의료기술평가나 수가 산정의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정부 지원이 끝나는 2027년 이후에도 개별 제품이 스스로 근거를 대며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사정은 그대로다. 데이터를 쌓을 종잣돈을 대주는 것과, 그 데이터가 실제로 수가로 이어지도록 평가와 급여의 문법을 손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전자는 개별 기업을 살리고, 후자라야 산업의 골짜기가 메워진다. AX-Sprint는 분명 전자에 속한다.

그럼에도 방향은 읽힌다. 그동안 정부는 허가까지만 책임지고 그 뒤는 시장에 맡겼다. 이번 사업은 허가 다음의 공백이 기업의 힘만으로 건널 수 없는 구조적 문제임을 정부가 인정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실사용 데이터를 정부가 사주고, 그 데이터를 제도 진입의 연료로 쓰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전과 다르다.


명단이 말해 주는 것

선정된 기업의 면면도 곱씹어 볼 대목이다. 루닛, 제이엘케이, 메디웨일, 시너지AI, 프리베노틱스는 하나같이 이미 식약처 허가를 받고 시장 진입 직전에 선 회사들이다. 아직 아이디어 단계인 스타트업이 아니라, 기술은 검증됐는데 돈이 안 되는 바로 그 구간에 갇혀 있던 기업들이다. 이 사업이 연구 개발이 아니라 상용화를 겨냥한다는 사실이 명단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다루는 질환도 우연이 아니다. 뇌졸중, 유방암, 위암, 부정맥, 심혈관 질환은 모두 조기에 잡을수록 치료비와 사망률이 크게 갈리는 병들이다. 뇌졸중은 몇 시간 안에 막힌 혈관을 뚫느냐가 후유증을 가르고, 위암은 전암 단계에서 잡으면 내시경 절제로 끝나지만 놓치면 수술과 항암으로 번진다. AI가 판독을 앞당겨 얻는 이득이 이렇게 뚜렷한 병일수록, 나중에 수가를 정당화하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뒤집어 말하면, 이득을 숫자로 보이기 쉬운 영역부터 골랐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가 성공 가능성이 높은 후보부터 실험대에 올렸다고 읽어도 무리가 없다. 첫 사례에서 실사용 데이터가 실제로 신의료기술평가와 수가로 이어지는 그림을 만들어 내면, 그 경로 자체가 다음 기업들이 따라갈 선례가 된다.

지난주 미국의 사례를 다루며 두 시장의 거리가 벌어지고 있다고 적었다. 이번주 한국의 응답은 그 거리를 곧바로 좁히지는 못한다. 규모도 작고, 구조를 바꾸는 대신 개별 기업을 건네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허가 이후의 골짜기를 처음으로 자기 문제로 끌어안았다는 점은 남는다. 이 다리를 건넌 회사들이 2년 뒤 실제로 수가라는 반대편 봉우리에 닿는다면, 그때는 다리를 놓는 대신 골짜기를 메우는 다음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출처

  •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 "AI 응용제품 신속 상용화 지원사업(AX-Sprint) 디지털 의료기기 분야 6개 컨소시엄 선정" 관련 보도 (2026-08-04)
  • 조선비즈, "정부, 의료 AI 상용화 지원… 루닛·제이엘케이 등 6개 컨소시엄 선정" (biz.chosun.com, 2026-08-04)
  • 약업신문, 제이엘케이 뇌졸중 AI 실증(22개 병원·2,500명) 관련 보도 (yakup.com, 2026-08-04)
  • News1·아시아경제·서울경제(영문) AX-Sprint 착수보고회 및 컨소시엄 관련 보도 (2026-08-04)
  • KDI 경제정보센터, AX-Sprint 정책자료 (eiec.kdi.re.kr, 2026-08)
  • 본 블로그, "FDA는 왜 허가 전에 메디케어를 열었나" (2026-08-03), 미국 TEMPO·CMS 비교
YS

신윤섭

데이너스 대표 | AI 교육 & AX 컨설팅

90개 이상의 AI/AX 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50여 교육·협업 기관에서 강의했습니다. 강남세브란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다양한 조직의 AI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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